[사설] 계약서도 없는 653억 정체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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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의 처남 민경찬씨가 "계약서나 약정서 없이 6백53억원을 모집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閔씨를 조사한 금감원 간부조차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어떻게 법인 설립도 되지 않은 회사가 투자 용처도 밝히지 않은 채 불과 두달 만에 그런 거액을 모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閔씨가 대통령 사돈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내사를 맡은 경찰청은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풀어줄 분명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우선 권력형 비리 사건이 아닌지 밝혀야 한다. 민주당에선 "차관급 이상의 인물이 개입했다는 물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치권 주변에선 盧대통령까지 연관지어 유언비어가 떠도는 실정이다. 금감원에서도 "누군가 개입해 모금을 주도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허술히 두었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올 수 있다.

閔씨가 말을 바꾸고 있는 대목도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처음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계약서의 존재를 인정했는데 금감원 조사에선 부인했다. 그가 법망을 피할 목적으로 서류를 숨기는 건 아닌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가 누구인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47명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1인당 평균 14억원씩 '묻지마 투자'를 했다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閔씨도 "내가 이런저런 것을 할 것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자금이 모여들었다"며 "불순한 의도의 돈도 들어왔다"고 시인하는 상황이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데도 청와대와 금감원이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다. 청와대는 사건이 불거진 지 며칠이 지나서야 "閔씨가 조사에 협조해 주지 않는다"며 뒤늦게 경찰청에 수사를 맡겼다. 금감원도 閔씨 조사를 해놓고도 제때 발표하지 않아 의혹을 자초했다. 이래서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원천봉쇄할 수 없다. 대통령 권력 주변 인물들의 비리가 계속 드러나는 이 시점에 친인척까지 가세하는 형국에서 개혁이니, 도덕성이니 외쳐봐야 설득력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