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멋'만 낸 30대의 사춘기-어깨너머의 연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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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14면

두 여자가 있다. 사진작가 정완(이미연)과 전업주부 희수(이태란)는 서른두 살 동갑내기 친구다. 오래된 단짝이 대개 그러하듯이 둘은 성격부터 삶의 방식, 남자 취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판이하다.

커리어가 삶의 전부인 정완에게 남자는 최고급 안마기와 비슷한 물건이다. 몸이 찌뿌드드하고 마음이 심란할 때면 가볍게 찾아가 부담 없이 이용하면 그만이다. 희수에게 남자는 수익성 높은 안심보험이다. 지루하고 볼품없는 배불뚝이 남편이라도 안정된 지갑만 있다면 살맛은 충분하다. 하지만 ‘여성영화’에서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는 되돌아온 사춘기나 마찬가지다. 정완은 유부남 직장 보스와 쿨하게 섹스를 나누지만 슬금슬금 연애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희수는 남편이 20대 초반의 여자애와 바람난 현장을 목격한 뒤 이혼을 결심한다.

‘어깨너머의 연인’은 30대 여성의 우정과 삶을 세밀하게 통찰하는 일본 작가 유이가와 게이의 동명 베스트셀러(『肩ごしの人』)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의 팬들이라면 조금 실망스럽겠지만 영화와 원작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외모와 성격이 아주 다르다. ‘ing…’의 이언희 감독은 게이와 원조교제를 비롯한 원작의 곁가지들을 대부분 쳐내고 ‘그대 안의 블루’와 ‘싱글즈’로 이어지는 ‘한국 30대 여성 자아찾기 영화’의 트렌디한 전통을 무심히 따른다.

영화가 가장 반짝이는 순간은 두 여자의 삶이 예기치 못한 위기로 빠져들 때 찾아온다. 남편과의 이혼을 쿨하게 선포한 희수는 직업소개소를 찾아가지만 직원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다그치고, 정완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버린 자신을 견디지 못한 채 방황한다. 영화는 30대 여성의 내적인 흔들림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주인공들이 얼마나 ‘쿨한’ 여자인지를 입으로 떠드는 데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고윤희 작가의 대사들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큰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용기는 없고, 자아선언을 부르짖는 몇몇 대사들은 놀랄 만큼 구식이다. 부득부득 뉴욕식이라고 주장하는 순(純)청담동식 브런치를 씹어 넘기는 기분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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