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인력 확충 땐 美 CSI 부럽지 않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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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04면

“과학수사는 돈입니다.”

서울경찰청 박영일 감식팀장 "야간 2인1조 출동은 꿈도 못 꿔… 외부 현상소서 사진 인화하기도"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박영일(46) 감식2팀장의 말이다. 박 팀장은 1992년 서울지방경찰청 감식요원으로 처음 과학수사에 발을 디딘 후 올해까지 17년째 현장 수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는 과거에 비해 경찰의 과학수사 역량이 몰라보게 향상됐지만, 국민의 높은 기대 수준에 맞추려면 부족한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인력 부족 문제가 그렇다. 박 팀장은 “일선 경찰서의 경우 야간에 사건이 발생하면 과학수사요원 1명이 감식차량을 운행해 현장에 출동한다”며 “적어도 2인1조로 움직여야 효과적인 현장감식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단 1명의 감식요원이 현장에 나가다 보니 휴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만을 갖고 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2인1조 3개조로 운용을 해야 하지만, 일선 경찰서에서 현장 출동이 가능한 과학수사요원은 불과 3명 정도다. 앞으로 60개 경찰서에 설치될 ‘증거물 관리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도 인력 확충이 절실하다.

과학수사 장비도 좀 더 보강돼야 한다. 박 팀장은 “2004년 오스트리아 경찰 견학 때 일선 경찰서가 보유하고 있는 장비를 보고 무척 놀랐다”며 “하나같이 우리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장 요원들에게 필요한 휴대용 소모품이 부족하다고 한다. 가령 발자국을 채취할 수 있는 ‘족적전사판’(개당 7000원)은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많은 쓰임새에도 충분한 양이 확보돼 있지 않다. 혈액형을 판별할 수 있는 장비가 있긴 하지만 정확성이 떨어져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건 해결이 그만큼 늦어진다.

박 팀장은 “혈액형을 정확히 판별하기만 해도 용의자를 4분의 1로 줄여 효과적이고 신속한 수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진을 인화할 때도 성능이 다소 떨어지는 프린터를 사용하거나 외부 현상소에 맡기다 보니 정확한 판독이 안 되거나 시간이 지체되곤 한다.

박 팀장은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우리 수사요원들처럼 현장 감식에서 손놀림이 뛰어난 인력은 없다”며 “여건만 개선되면 미국 CSI 못지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수사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장 보존을 위한 시민의 협조도 필요하다.

경찰의 2007년도 예산은 6조6985억원. 지난해에 비해 3400억원 정도 늘었지만 범죄수사 예산은 1373억여원으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9억여원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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