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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피서차량에 묻힌 버스전용차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우리의 시민정신은 갈길이 멀다.」 30일 오후 경부고속도로양재-신탄진인터체인지 1백34㎞ 구간에서 시범실시된 버스전용차선제를 헬기에서 보고 느낀 점이다.지상 50m에서는 경찰 헬기가,지상에선 순찰차와 고속버스운송조합 관계자들이 홍보전단을 나눠주며 목청이 터져라「버 스전용차선제 준수」를 외쳤지만 피서 운전자들에겐 牛耳讀經.
「내 갈길 내가 가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당당히 1차선 주행을 계속했다.
정오부터 시작된 경찰의 계도활동은 서울톨게이트에서부터 시작됐다.3백여대의 순찰차량과 5백여명의 고속버스관계자,경찰과 도로공사 헬기 두대가 35도를 웃도는 찜통더위를 무릅쓰고 여섯개의휴게소와 수십군데의 갓길에서 진을 치고 성숙된 시민정신을 기대했다. 톨게이트를 통과한 지점에는 수십명의 교통경관이 1차선을막고 승용차 진입을 막았다.효과는 당장 있었다.톨게이트에서 4~5㎞지점까지 버스차선인 1차선을 운행하는 차량은 간간이 눈에띄었을 뿐이었다.헬기에 탑승한 경찰은「역시」하며 흐 뭇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수원을 지나자 상황은 정반대.하나둘씩 위반차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영동선과 갈리는 신갈인터체인지 부근에 이르자 언제 전용차선이 있었느냐는듯 버스와 승용차가 뒤엉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병목현상으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하다보니 생긴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했다.신갈인터체인지를 넘고 오산을 향해 내려가자 도로는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소통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1차선은 피서차량과 버스가 속력을 다퉜고 간간이 피서차량에 밀린 버스가 2차선으로 운행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후 신탄진까지 1백㎞가 넘는 도로는 전용차선제가 아예 무시돼 평상시와 다름없이 차선 구분이 없었다.헬기는 고도를낮추며 버스차선 운행차량에 하위차선으로 갈 것을 목청껏 외쳤으나 1차선을 떠나는 차량은 단 한대도 없었다.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버스차선운행을 자제해 달라」는 홍보전단을 불과 20여분전에 받아든 시민들의 차량이었다.
참다못한 교통경관이 한마디 했다.
『역시 우리는 아직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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