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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계속 치솟는 국제 원자재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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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동(銅)으로 건축자재를 만드는 경기도 안산의 K사는 당분간 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구인난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존해 겨우 공장을 돌리던 차에 국제 원자재값까지 폭등하면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 崔모 사장은 "지난해 초 t당 1천5백달러 안팎이던 국제 동 가격이 최근 2천5백달러로 60% 이상 올랐다"며 "내수 침체로 원가 상승분을 완제품 값에 반영하지 못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원유를 비롯한 철.동.니켈.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뜀박질하면서 국내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수출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그런 대로 충격을 흡수하고 있지만, 내수시장 중심의 중소기업들은 공장 가동이 힘든 한계상황으로 몰리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원자재 파동의 여파로 연초부터 국내 소비자물가도 크게 상승해(1월 전월대비 0.6%) 가뜩이나 가라앉은 내수를 더욱 얼어붙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재와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경쟁국들보다 훨씬 높다. 원자재값 상승은 국내 경기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한편 경기의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

한국이 주로 쓰는 중동 두바이산 원유값은 최근 배럴당 29달러선을 기록, 지난해 4월 이후 5.5달러(25%) 올랐다. 또 최근 1년새 니켈이 97%, 납은 73%, 천연고무가 48% 상승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국내 소비자 물가는 0.15% 상승하고, 무역수지가 연간 8억달러 악화되며, 경제성장률도 0.1%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왜 오르나=우선 중국 요인이 꼽힌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연 8%대의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은 국제 원자재를 무섭게 빨아먹는 '하마'가 됐다. 지난해 중국의 원유 등 주요 원자재 수요는 30%나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경기도 살아나면서 원자재 수요가 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중국은 고정자산 투자가 매년 30%씩 증가하고 있다"며 "중국이 경기 진정책을 모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부 및 동북부 대개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감안할 때 원자재 수요는 계속 늘 것"이라고 진단했다.

달러약세 흐름과 저금리 현상 또한 원자재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원자재 공급자들은 결제대금으로 받는 미 달러의 가치가 자꾸 떨어지자 원자재값을 계속 올리고 있다. 예컨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통화인 랜드화의 가치는 미 달러화에 대해 최근 1년 새 50%나 올랐다. 이에 따라 남아공의 수출업자들은 백금 등 주요 수출 원자재값이 달러화 기준으로 50% 올라봐야 자국 통화로 손에 쥐는 수출대금에는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그만큼 생산량 늘리기에도 소극적이다.

이 와중에 국제 헤지(투기)펀드까지 원자재 사재기에 나서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오랜 저금리 기조로 오갈 곳을 잃었던 국제 유동자금은 국제 상품시장에서 투기적 거래에 나서 재미를 보고 있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상품지수는 지난해 30% 가까이 올라 미 뉴욕증시의 다우지수 상승률을 웃돌았다.

◇경기 회복에 부담=전문가들은 국제 원자재값의 상승 흐름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박복영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회복과 중국 요인 등을 감안할 때 원자재 품귀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만 원유값은 러시아 등의 신규 공급이 활발해 동절기 수요가 마무리되는 2분기부터 안정된 흐름을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 고유선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달러 가치도 강세로 돌아서면 원자재값 오름세에 일단 제동이 걸릴 것"이라며 그 시기는 올 3분기쯤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원자재값은 올 하반기 이후에도 국내 경제에 적잖은 부담을 줄 것이란 지적이다. 고유선 애널리스트는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수익성이 나빠지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성명기 연구위원은 "아직은 연초이기 때문에 더 두고봐야겠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이 설정한 올 3% 물가 억제 목표치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세종증권 조용환 애널리스트는 "원화가치가 오르면 달러로 지급하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면서 "원화 강세로 얻는 것도 많은 만큼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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