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할말은하자>7.냄비언론이 만들어낸 토초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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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상관측이래 90여년만에 가장 무덥다는 여름.상공자원부와 한전 관계자들은 전력예비율이 바닥을 드러내면 낼 수록 原電추가설치계획에 쏟아지던 언론의 무자비한 공세가 원망스러운 기억으로 떠오른다.
86년 동자부와 한전은 장기적인 전력 확보책으로 원전 추가건설 계획을 내놓곤 언론으로부터 흠씬 매를 맞았다.
당시 전력설비예비율은 50%선.언론들은 『전력이 철철 남아도는데 웬 예산낭비냐』고 몰아붙였다.
당장은 전력이 남을지 모르나 경제규모의 발전추세로 볼때 머잖아 모자라고 원전 1기 건설에 줄잡아 5~10년은 걸리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한다고 누누이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미 방향이 설정된 언론들은 소나기처럼 반대론만 일제히 쏟아낼뿐 그같은 설명은 아예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신문마다 사설.칼럼.해설기사등을 총동원,과잉투자와 민원소지를언급하며 백지화를 촉구했다.
계획은 결국 대폭 축소됐고 그같은 사회분위기가 한동안 계속돼원전건설은 중단상태나 다름없게 됐다.
『어찌나 융단 폭격을 가하는지 원전 추가건설 입안자는 매국노취급을 받을 정도였다』라고 한전의 당시 실무관계자는 회상한다.
전력부족현상은 불과 5년뒤인 91년 심각한 현실로 나타났다.
한바탕 에너지 절약소동이 벌어진데 이어 올해는 더욱 애를 태웠다. 당시 계획이 틀어진 것을 후회하는 만큼 한치앞도 내다보지못하고 목청을 높인 언론의 단견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요즘 이상고온으로 전력예비율이 낮아지자 언론은 태도를돌변,전력소요예측을 하지 못했다고 꾸짖고 사전대책 소홀을 몰아세웠다. 당하는 입장에선 하품 나올 노릇이다.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잡곤 오히려 뺨치는 격』이라고 전력 관계자들은 쓴웃음을 짓는다.
언론의 몰아치기가 시작되면 고삐풀린 말과 같다.반론이 존재할수 없다.자칫 반박논리를 펼치다간 더 몰매맞기 십상이니 할말을어떻게 하겠느냐고 많은 이들이 하소연한다.
우리네 언론 풍토에선 소신이 자리잡을 틈이 없다고 머리를 흔든다. 언론인 출신의 李敬在공보처차관은 최근 언론의 몰아치기 보도를 떼강도에 비유해「떼기사」라고 꼬집었다.
어떤 문제가 나오면 너나없이 거의 같은 견해로 선동하고 몰아가다간 싹 잊어버리는게 우리 언론이라는 비판이다.냄비언론이라는것이다. 전문성도 없으면서 전문가然하고,세심히 따지는 과학적 자세도 부족하며 논리의 일관성결여에 도덕성까지 의문시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29일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위헌판결을 내린 토지초과이득세도 89년 언론의 떼기사가 탄생시킨 작품이다.
부동산투기 척결이 국가적 지상명령이며 토지공개념은 시대적 요청으로 포장된채 일부에서 제기되는 위헌성문제와 부작용은 묵살됐다. 부동산투기가 망국병으로 꼽히던 시기라 토초세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가 넓었던게 사실이지만 언론들은 그에 따른 부작용과문제점에도 눈을 돌리는 자세를 가졌어야 했다.
시중은행의 한 홍보담당자는『우리 언론은 큰 사건이 터져 1탄을 쓰고나면 그다음부터는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2탄,3탄 무한경쟁에 돌입하면서 침소봉대 뻥튀기가 난무한다.
〈許南振기자〉 그러면서도 약속이라도 한듯 신문마다 논조는 똑같다.반대쪽 사정이나 논리는 깡그리 무시한다』고 혹평했다.
車培根교수(서울대 신문방송학)는『지나친 상업주의가 선정주의와군중심리에 편승한 共鳴性을 초래한다』고 진단하고『각자 자기 목소리를 갖고 차분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숲은 외면한채 미세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전부인양 확대보도하는 현상은 외국언론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다.
얼마전 미국 대통령선거를 전담 취재했던 한 기자는 당시 기자들을『버스타고 있는 소녀들』에 비유했다.차창을 내다보다 어느 한 친구가 손가락질을 하면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곤 감탄사를 연발하는 수학여행 여학생들.
그는 유세장에서 한 기자가 어느 한 부분에 관심을 두면 다른기자들도 모두 같은 앵글이 돼 버린다고 자기 비판했다.사안의 크고 작고에 상관없이『우-』달려드는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우 그 도가 종종 상식선을 넘는다.일단 불이 붙으면사실확인도 뒷전으로 밀린다.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며 오히려 사태해결을 그르치는 愚도 많다.
국익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숨가쁘다.
시베리아 북한벌목공문제의 경우 각사가 경쟁에만 급급한 결과 러시아정부를 자극시켜 송환교섭을 어렵게 만들었다.뿐만아니라 숨어지내는 탈출 벌목공들의 신변안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對北협상 실무자들은『우리언론이 협상용 카드까지 시시콜콜보도.분석하고 있어 북한대표들은 한국신문만 보면 우리쪽 상황을훤히 알 수 있게 돼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논리모순은 수두룩하다.매년 정부 예산안을 보곤 긴축재정이 필요하다고 주창하면서도 동시에 추곡가를 더 올려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자율경쟁이 신장돼야 한다면서경제력 집중을 걱정하고 중복투자에 대한 교통정리 를 하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金珉煥교수(고려대 신문방송학)는『신문이 흑백논리에 빠져 건전한 토론문화를 그르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중앙일보의 이 시리즈도『할말은 하자면서 다른 견해는 봉쇄하는 감이 없지 않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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