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67. 빚 3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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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필자(왼쪽에서 둘째)와 대학원생들이 85년 9억원짜리 초전도 전자석을 넘겨 받아 조립하고 있는 장면.

세계 최초로 2테슬러 초전도 MRI를 개발하기까지 많은 일화가 있었다. 1985년 봄이었다. 과기처에서 통보가 왔다. 담당 공무원이 바뀐 것이다.

“조장희 교수님, MRI는 그동안 연구를 많이 했고, 연구비도 많이 지원됐으니 이제 그만 하시길 바랍니다.”

60만 달러(약 9억원)짜리 2테슬러 초전도 자석을 영국 옥스퍼드사에 1년 전 주문한 데다 중도금 40만 달러(약 6억원)까지 준 상태였다. 그런데 그만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지금 중단하면 중도금을 모두 떼인다고 설명해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내가 처음 초전도 자석을 주문할 때는 그렇게 큰 초전도 자석을 필요로 하는 데가 없어 옥스퍼드사는 독일 지멘스와 미국 GE 그리고 나 등 세 군데만 중도금을 받고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 잔금만 치르면 물건을 받아올 수 있었다. 주문한 지 1년이 지난 85년 봄에는 2테슬러 같은 초고자장 연구를 해보려고 한두 곳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준비하고 있었다. 혹시 놓치면 모처럼 고생한 보람이 없어질 수 있었다. 그런 초전도 자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어서 내가 포기하면 당장 다른 곳에서 사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시 KAIST 전학제 원장을 찾아갔다. “돈 3억원만 꿔 주십시오. 이러다간 MRI 연구고 뭐고 다 결딴나게 생겼습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떼를 썼다. 선배 교수였던 전 원장은 황당해했다.

“조 교수, 정신 나간 것 아니야. 내가 무슨 재주로 3억원을 꿔주나. 행정상으로도 그렇게 돈을 교수한테 꿔줄 수가 없어.”

전 원장이 재무 담당 직원을 불러 돈을 꿔줄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그 직원도 막무가내였다. 3억원은 당시 내 KAIST 월급을 10년 이상 모아야 하는 금액이었다. 전 원장이 꿔줄 수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달라붙어 떼를 썼다. 내가 MRI를 개발하면 금성이나 삼성 등 기업이 기술을 팔라고 할 테니 로열티를 받아 갚겠다고 계속 설득했다.

전 원장이 무슨 수를 썼는지 3억원을 빌려줬다. 그것으로 잔금을 치르고 값비싼 전자석을 드디어 넘겨 받았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전 원장이 고맙고, 그도 나를 만나면 그때 얘기를 끄집어내곤 한다.

우리 연구실은 초전도 자석을 넘겨 받으면 즉시 조립해 MRI를 만들 준비를 해놓았다. 전자석을 받자마자 당장 조립해 한 달 뒤 85년 6월 첫 영상을 얻었다. 영상 선명도는 기존 것보다 수십 배 이상 좋아 보였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기까지 했다. 드디어 세계 최초로 초전도 MRI 시대를 연 것이다.

이런 소식이 해외까지 퍼졌다. 재미동포였던 카메롯사의 사장이 찾아왔다. 자신이 상품화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카메롯사는 내가 KAIST에서 빌린 3억원도 갚아줬다. 그러나 자금이 달린 카메롯사는 상품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기술 사용권을 금성사에 팔았다. 금성사가 83년 첫 1k가우스 MRI를 상용화한 데 이어 2테슬러짜리 MRI까지 상용화하게 된 배경이다. 금성사는 1k가우스 MRI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았고, 더 이상 판로 개척이 어렵다며 2테슬러짜리 공동 개발에서 발을 뺐었다. 그러나 내가 2테슬러 초전도 MRI 개발에 성공하자 다시 나와 손잡고 88년 상품화에 성공했다.

조장희<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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