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 웬수 같은 쿵쿵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9면

 남편은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다. 선배 소개로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 얼굴에 눈부신 후광이 보였을 정도로 난 남편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당황해했고, 그런 나는 남편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좀 더 조숙해 보이려 정장만을 고집했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조심하며 어른스레 보이려 했다. 결국 우린 3년 만에 결혼을 했다. 결혼 뒤에도 나의 ‘어른 컨셉트’는 이어졌다. 특히 나와 동갑인 막내 아가씨에게는 올케언니라는 느낌이 팍팍 올 수 있도록 말은 적게, 표정은 온화하게, 실수는 절대 금물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우고 대했다. 물론 실수의 지름길 ‘술’은 잘 못 한다는 핑계로 한 잔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

 나의 조신한 이미지가 굳어져 갈 즈음 막내아가씨가 결혼할 상대를 데려왔다. 두 살 어린 뽀얀 피부의 남자였다. 배가 남산만한 삼십대 중반의 남편과는 비교할 수 없이 푸릇푸릇한 젊은이였다. 부럽기도 했지만 애써 마음을 감췄다. 어느 날, 아가씨와 남자친구는 저녁을 함께 먹자며 둘째 아가씨 내외와 우리를 초대했다. 저녁을 먹으며 한 잔씩 한 식구들은 기분들이 한껏 들떠서 2차를 갔다. ‘지화자’를 몇 차례 외친 우리는 장안의 화제인 ‘쿵쿵따’를 하며 걸리는 사람은 벌주를 마시기로 했다. 아! 그런데 다들 밥만 먹고 쿵쿵따만 했나? 걸리는 사람은 계속 나였다. “술을 못 해서”라며 한잔으로 꿋꿋이 버티던 나에게 벌주가 계속 이어졌다. 연속해서 서너 잔을 마시자 몸이 붕 뜨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헤죽거리는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식구들은 ‘쿵쿵따’를 계속하며 나에게 벌주를 내렸다. 남편은 “내가 다 책임 질게”라며 옆에서 거들어댔다. 분위기도 그렇고 기분도 너무 좋아 꿀꺽꿀꺽 마시던 나는 드디어 필름이 끊겼다.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에게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나 어제 실수한 거 없어요?” 하고 묻자 남편은 믿기 힘든 말을 쏟아냈다. 여러 잔의 술로 얼굴이 벌게진 나는 갑자기 “아유! 아가씬 무슨 복으로 이렇게 탱탱한 영계를 만났대, 너무 좋겠다. 내가 눈이 삐었지? 이런 배불뚝이 아저씨 뭐가 좋다고 결혼을 했는지?” 하면서 아가씨 남자친구 배 한 번 눌러보고, 남편 배 눌러보고, 얼굴도 한 번씩 당겨 보면서 “이거 봐 이거, 피부가 틀려 피부” 하면서 갖은 주접은 다 떨다가 남편 손에 이끌려 먼저 나왔다고 한다.
  ‘십 년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진다’ 더니 정말 내 꼴이 그 짝이다. 웬수 같은 술, 다신 마시나 봐라.

김영래(34·주부·경기도 의정부시 산곡 1동)

10월 26일자 주제는 잠꼬대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주소·전화번호·직업·나이를 적어 10월 22일까지로 보내 주십시오. 채택된 분께는 원고료를 드리며, 두 달마다 장원작 한 편을 뽑아 현대카드 프리비아에서 제공하는 상하이 왕복 항공권 및 호텔 2박 숙박권을 제공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