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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외무부한국전관련문서요약>2.김일성 전쟁준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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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49년 1월17일부터 1950년 1월19일까지 金日成은 소련과 중국에 남한 침공을 위한 승인과 지원을 끈질기게 요청한다. ◇蘇聯의 군사지원 시작 ▲1949.1.17=슈티코프 북한주재 소련대사는 金日成에게 소련정부가 북한의 공식대표단을 2월께 접수하기로 동의했음을 통보.슈티코프대사는 남한측이 남북분단을 영구화하기 위해 朝-蘇우호조약 체결을 북한에 불리한 선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소련정부는 현시점에서 북한과의 우호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북한지도부에 설명.
▲1.27=소련대사는 1월15~25일중 남한의 군인.경찰이 수차에 걸쳐 38선을 넘어 침입해 온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고.
▲2.3=슈티코프대사는 38선 부근에서 발생한 북한군초소에 대한 남한군대의 공격에 관해 몰로토프외상에게 보고.
▲2.4=비류조프장군은 대사의 거듭된 요청에 의해 소총탄 2백50만발,TT-3용 탄알 3백20만발,82㎜박격포 1만5천발,소총 1천5백정,자동소총 1천2백정,권총 4백정,중기관총 1백문,82㎜박격포 40문을 적재한 태평양함대 소속 함정이 북한으로 향했음을 외무성에 보고.
▲2.9=슈티코프대사는 소련 태평양함대 부사령관이 平壤에 도착했음과 이 부사령관이 총사령부의 지시에 의거 전투비행연대를 봉천에 배치할 것임을 보고.
▲2.24=극동지역군구 사령관 푸르카예프는 슈티코프대사에게 남한군의 병력수.조직.장비및 전쟁준비능력 등에 관해 문의.
◇金日成과 스탈린 회담 ▲3.5=金日成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의 회담때 남한에 대한 무력침공과 무력에 의한 조선통일에 관해 소련지도부의 의견을 문의.스탈린은 북한군이 남한군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답변하고 남한에 美軍이 아직은 주둔하고 있음(소련군은 48년12월 북한에서 철수)과 美.蘇간 38선 분할에 관한 합의를 상기시킴. 〈김일성-스탈린 대화개요〉 스탈린:남한의 미군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金日成:2만명 정도.
스탈린:남한에는 국군이 있는가.
金日成:약 6만명 있음.
스탈린:(웃으면서)강한가.
金日成:강하지 않음.
스탈린:북과 남 군대중 어느쪽이 더 강한가.
朴憲永:북쪽이 강함.
▲3.11=몰로토프가 스탈린에게 북한에 대한 차관공여 협정안을 제출하고 검토를 요청.
◇모스크바도 의심한 북한의 첩보 ▲4.17=소련의 비신스키외상은 첩보에 의거,남한주둔 미군의 철수가 49년5월로 예정되어있음을 駐북한 소련대사에게 통보.
▲4.28=金日成은 슈티코프대사에게 한반도 상황변화에 따라 북한군의 무력및 기술강화가 필요하다는 서한을 스탈린에게 전달해줄 것을 요청.
▲5.3=슈티코프대사는 상기 金日成의 서한을 모스크바에 송부하면서 金日成의 요구를 지지한다는 메모를 첨부.
▲5.4=슈티코프대사는 4월17일자 지시에 의거,입수한 남한주둔 미군의 철수상황에 대해 보고.
▲5.14=金日成은 노동당중앙위원이자 북한군 정치국장인 김일의 중공방문결과를 슈티코프대장에게 설명.
毛澤東은 金日成이 가까운 시일내에는 남한을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로는 전반적으로 국제정세가 별로 유리한 상황이 아니며 중국공산당이 장개석군과 전투중이어서 평양을 도울수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그는 국민당을 패퇴시켜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완전지배할 때까지 결정적인 행동을 유보할 것을 金日成에게 권고.
▲5.18=소련군 참모본부 첩보총국에서 스탈린앞으로 보낸 보고서.북한에서는 미군이 가까운 시일내에 남한에서 철수할수도 있다고 보고 있으나 미군 대신 일본군이 들어올수도 있음을 염려하고 있음.
▲6.4=소련정부는 金日成에게 4월28일자로 요청했던 무기와군사기술을 제공하는데 동의함을 통보.이 지원의 대가로 북한측이소련에 정미된 쌀 3만t을 공급하는 방안이 제시됨.
▲6.6=슈티코프대사는 북한이 통일민주조국전선을 창설,이 단체로 하여금 남북한 동시선거 실시를 촉구토록 할 계획이며 선거결과에 따라 全조선에 단일정권수립을 제의할 것이라고 보고.
북한 지도부는 북한에서는 좌파가 약 80%,남한에서는 약 65~70%를 득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金.朴은 남한의 李承晩대통령이 통민전이 제의한 선거를 거부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바 그 경우 좌파는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것이며 평화적 통일방안이 조선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보고.
▲6.10=슈티코프대사는 미군이 실제로 한국에서 철수하는 것이며 본대는 6월15일께 한국을 떠날 것인바 李承晩은 미군철수완료시기를 49년7월1일로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보고.
▲6.25=슈티코프대사는 북한군의 상세정보를 보고.슈티코프 대사는 북한군의 방어과제,예상되는 남한군 침공에 대비한 북한의병력배치 및 준비상황에 관해 기술하고 북한군의 공격적 군사행동및 반격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그 는 소련측이 신속히 무기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남한의 북침이 있을 경우중공으로부터 인민해방군 한인사단이 신속히 파병돼야함을 지적.
◇金日成의 옹진반도 점령계획 ▲8.12~14=슈티코프대사는 휴가차 모스크바로 가기전에 북한지도자들과 면담.
▲8.12=金日成.朴憲永은 남한이 통일민주조국전선의 평화적 통일안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북한은 對南공격을 준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남한에서는 李承晩정권에 대한 대규모 민중봉기가 분명히 뒤따를 것이라고 언급했음을 보고.
▲8.14=金日成은 재차 對南공격 당위성을 역설.이를 위해 인민군에 대한 소련의 기술.무기의 추가지원및 2~3개 무기체계의 구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甕津(남한)을 점령해 현행 38선으로 이루어진 경계선을 1백20㎞ 단축,최소한의 병 력으로 경계선 방어를 가능케 하고자 하는 계획을 제시.소련대사는 좀더 자세한 가능성과 전체상황을 파악한뒤 행동을 취할 것을 권고.
▲8.27=슈티코프대사는 8.12~14면담 내용을 스탈린에게보고하고 북한지도부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소련대사는 북한의 對南공격이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림.
▲9.3=金日成은 자신의 개인비서겸 露語통역인 문일을 툰킨공사와 면담토록 함.문일은 옹진 점령계획에 대한 소련측 견해를 문의하고 金日成은 만일 이 계획이 국제문제화 될 경우 남한을 2주일에서 2개월내에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하고 있다고언급. ▲9.12~13=9월11일자 지시에 따라 툰킨공사는 金日成.朴憲永을 면담.
-9월12일 면담에서 金日成은 38선 지역에서의 충돌경험에 의하면 남한군의 전투 수행능력은「취약하다」고 언급.빨치산 활동에 관한 질문과 관련,金은 자신의 정보를 인용,남한에 1천5백~2천명의 빨치산이 활동중이며 최근들어 그 활동이 증대하고 있다고 언급.
朴憲永은 툰킨공사와 면담때 金과 다른 의견을 표명.
남한내 빨치산은 인민군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적의 통신및 연락을 차단함으로써 북의 남침을 도울 것이라고 언급.
-결론적으로 金日成은 구체적 제안으로 옹진에 주둔중인 남한군2개 연대를 공격,교두보를 마련하고 상황에 따라 후속조치를 결정할 것과 옹진 공격으로 남한군의 사기가 저하될 경우 對南공격을 지속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확보된 점령지 경계 를 강화하고 남북경계선을 3분의1 단축시키는 방안을 제시.金은 이 작전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남한이 38선상의 다른 지역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 없다고 보고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표명.
-툰킨공사는 전면전 수행은 물론 옹진반도 점령이라는 제한적 작전수행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
▲9.15=슈티코프 소련대사가 스탈린에게 제출한 한반도 상황에 관한 보고서.8월27일자 보고에 대한 추가이며 남북한의 정치.경제.군사상황과 여러 정치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포함되어 있음.
보고서는 북한지도부가 현 정세아래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이 남한정부를 무력공격하면 남북 양쪽의 인민들이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음.
▲9.24=공산당중앙위는 평양주재 대사에게 지침을 하달.이 문서에는 金日成과 朴憲永에게 전달될 소련의 입장이 포함되어 있음.이 문서에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대내외적 상황으로 보아 남한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강조.또한 이러한 공격은 북한의 침략행위로 간주될 것이며 북한의 내전도발 의도로 평가될 것인바 북한의 공격은 미국이 북한의 침략문제를 유엔총회에 제소해 유엔으로부터 미군의 남한 파병에 대한 승인을 받아낼 수 있는 구 실을 제공할 수 있으며 남한에 대한 외군점령의 장기화는 결국 조선통일의 지연으로 귀착될 것이라고 지적.
옹진반도 점령작전과 관련,이 작전이 군사적으로는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남한측이 이를 전면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과 이에 따라 장기적 분쟁으로 발전될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 ▲10.4=평양에 귀임한 슈티코프는 스탈린의 지침을 金日成.朴憲永에게 통보하였으나 북한지도부는 이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임. ◇스탈린과 毛澤東의 지원 ▲12.16~1950.2.17=毛澤東이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
▲1950.1.7=슈티코프대사는 金日成의 1949년12월29일자 메시지를 모스크바에 전달.동 메시지에는 1950년중 약 1억1천2백만루블 상당의 무기를 북한에 원조해 달라는 요청이 포함되었으며 이 원조의 대가로 비철금속을 공급하는 방안이 제시됨. ▲1.8=임표는 중국인민해방군 산하에 1만6천명 이상의 조선인이 있음을 통보하는 毛澤東 명의의 전문을 모스크바에 타전. ▲1.11=슈티코프대사는 1월9일 金日成을 면담,중국인민군예하 조선인사단의 이관문제를 협의했다고 보고.
▲1.19=슈티코프는 1월17에 朴憲永관저에서 개최된 리셉션때 북한지도부 대화내용을 보고.
金日成은 소련대사관의 이그나티예프 참사관과 펠류쉔코 참사관에게 이제는 중국의 통일이 완료되었으므로 남한을 해방시킬 차례라고 언급.金은 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스탈린과의 면담을 희망. 스탈린과 만날수 없을 경우 毛澤東과 면담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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