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軍이 "짱"이 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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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 경제는 이미 고용문제로 깊은 병이 들었다. '고용없는 성장'이란 원래 선진국들이 걸리는 병인데, 우린 겨우 소득 1만달러에 그런 병에 걸려들었으니 큰일이다. 말만 무성하지, 별로 신통한 고용대책이 안 나온다. 대통령도 큰소리뿐이고 관료들도 면책성 쇼에 급급하다. 공무원 임시채용 확대라든지, 신규채용 기업에 대한 세금감면 등은 엄밀히 말해 정책이랄 수 없다.

선진국형 실업병은 한국 경제로선 첫 경험이다. 치유에는 최소한 3년 내지 5년은 내다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당장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장차라도 일자리가 늘도록 진력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실질적인 대안 하나를 제시하고 싶다.

*** '고용없는 성장' 이겨낼 대안

고용대책의 일환으로 군(軍)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한국 젊은이들이 학업과 취업 사이에 2년간 군에 가는 것은 한국 특유의 시스템이다. 군을 마쳐야 취직도 제대로 된다. 시간적으로나 연령적으로나 군과 취업은 뗄 수 없는 관계다. 또한 군대는 실업의 부담을 일정 기간 떠안아주는 완충기능도 하고 산업예비군의 배출대나 대기소 역할도 해준다.

이것의 효율을 더 높여나가자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군대에서 중국어를 강제로 배우게 하는 것이다. 누구든 군에 가기만 하면 복무기간 중에 중국어를 배워 최소한 중급 자격증을 따고 제대한다고 치자. 이렇게 10년만 지나면 한국 젊은 남자치고 중국말 못하는 사람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 중국을 먹고 살아야 하는 판에 중국말 공부의 필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군 당국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신성한 군대가 무슨 대치동 학원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시간 부족으로 컴퓨터 교육마저 중단한 상태인데, 총검술은 언제 하란 말이냐고 반문할 게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음 먹기 달렸다. 총검술로만 나라가 지켜진다는 식의 생각 자체를 고친다면 없던 시간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정책방향에 맞춰 일의 우선순위만 조정하면 된다. 그야말로 누군 군대 안 가봤나. 한국 군대가 시간이 없어서 중국어 못 가르친다, 컴퓨터 못 가르친다고 말하면 이 나라 예비역 사병 중에 과연 몇사람이 수긍하겠나.

꼭 중국어가 아니라도 좋다. 영어든 일본어든 컴퓨터 등 무엇이라도 제대하고 취직하는 데 중요한 무기가 되는 언어나 지식을 군복무 중에 익히게 하자는 것이다. 군인들은 훨씬 바빠질 것이고 생산성은 절로 올라갈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매우 근본적인 고용대책이자, 군 자체의 힘을 총체적으로 증강시키고 군의 이미지 자체를 확 봐꿔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격이다. 군복무 기간을 두고 젊은 인생들의 '잃어버린 시간'이니 '단절의 기간'이니 푸념도 사라질 것이다.

중국 여행 정도는 말 불편 없이 할 수 있도록 군이 만들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엎드려 뻗쳐를 시켜가며 '군인의 길'을 암기시키듯 중국어를 가르친다면 부모들이 군기피는커녕 다투어 자식들 군대보내기에 나설지도 모른다. 정부도 취업 교육을 별도 예산 써가며 따로 할 필요가 없다.

*** 여군 확충 '발상의 전환' 필요

한가지 제언 더. 남자는 그래도 좀 낫다. 취직 안 되면 군대라도 갈 곳이 있으니 말이다. 여자는 그것도 안 된다. 아들딸 구별않고 똑같이 키우고 가르쳤으나 청년실업은 여자 쪽이 훨씬 심각하다. 숱한 고급 여성인력이 엉뚱한 데로 빠지고 있는 현실은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래서 군대가 여군 뽑기를 확 늘리는 것도 효과적인 방책이 될 것이다. 여자라고 전투병력에 부적합하다는 것도 옛날 이야기다. 전쟁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지고 국방의 개념이 통째로 바뀌는 판에 '여자는 안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통령이 결심하고 군 수뇌부가 발상을 전환하면 얼마든지 여군 숫자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만 하면 기피의 대상이었던 군의 인기가 단숨에 '짱'이 될 것이다. 어쨌건 65만 한국 군대의 생산성이 매년 몇%씩만 올라도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이장규 경제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