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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공무원 市場에 몰아친 태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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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풍이 불다가 간간이 돌풍이 스쳐가던 공무원 시장에 인사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공기업 임원들도 엎드려 있다. 뒤늦게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는 혁신적인 인사제도가 도입된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 움직임을 둘러싸고 지금 돌아가는 게 예사롭지 않다며 제 앞길을 걱정하는 공무원도 있다. 어떻든 특정 집단이 독점하다시피한 공무원 시장에 경쟁자들이 나타났다. 중앙 부처별로 마피아들이라고 불리던 고위 공직자들의 군웅할거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될 시기가 다가왔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최근 정부 주요 부처의 22개 핵심 국장자리에 가치 판단을 달리했던 상대 부처 인물들이 자리를 맞바꿔 앉았다. 새로이 추가된 국장급 공모 10자리에도 경선을 거친 다른 부처 관료들이 엄선되었다. 2년 후인 2006년부터 이미 예고된 고위 공무원 풀(Pool)제가 도입되면 국장급 이상의 타 부처 이동이 더욱 확대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들이 오래전부터 실시해온 정부관리계층 집단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적극적인 대국민 행정 서비스를 하도록 훈련받는다.

이번 국장급 인사 교류 대상자 가운데 일부는 도전력을 보였고 일부는 떠밀려 갔다. 어떤 이유에서건 새 자리에 들어서는 국장들의 적응 노력과 이들을 맞이하는 기존 조직의 수용 정도가 정밀한 평가 대상에 올라 있다. 2년 뒤 도입될 고위 공무원 풀제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이번 국장급 교류는 정부 인사혁신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타 부처로 옮겨간 신임 국장들이 쫓겨나지만 않는다면' 이 제도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볼 만큼 공무원 사회의 배타성과 비협조적 관성 등 크고 작은 어려움이 깔려 있다.

공무원 인사제도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로 옮겨가면서 새 천년이라는 시대의 전환만큼이나 엄청난 변화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가경쟁력 제고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위 관리자(민관 구분 없음)의 역량 수준은 선진 49개국 중 42위(스위스 IMD 보고서)로 처져 있다. 2류 국가, 2류 공무원, 2류 기업의 틀에서 벗어날 시기는 아직 멀다. 뒤늦게나마 국내 대기업들이 5~6년 전부터 핵심인력 육성 프로그램 운영으로 인적자산 확보에 전념해 왔으며 현재 중견 기업을 포함해 60% 정도까지 이 제도가 확산됐다. 기업이 정부를 훨씬 앞질러 가고 있다.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인턴공무원제 도입도 어지간한 민간기업들이 수용하고 있는 인사채용 방식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을 혁신적 제도라고 부르는 것은 엘리트들이 독차지해왔던 정부 요직을 5급 고등고시 합격자 이외의 우수 대학생들에게도 개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쟁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다. 고시제도라는 경직된 공무원 채용방식 개편안은 여러 가지 장점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실개입 등에 대한 사전 예방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개혁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 제도와 함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편안은 고위 공직자의 직무수행 환경과 직무 능력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전제돼야 한다. 농림부가 농민만을 대변하고 노동부가 노동자만을 대변하는 등의 기관이기주의나, 국익을 챙기지 않는 관료의 자기보존 본능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국민은 더욱 강도높은 공무원 시장의 개방과 경쟁체질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원들이 긴장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1류를 지향할수록 심신이 고달퍼진다. 그러나 거기에 보람과 미래가 있다.

최철주 논설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