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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교란­권력다지기 “2중 포석”/북 장례식 왜 돌연 연기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문 파문」확산 겨냥한 정치 계산/추도대회 따로 열어 「충성심」 고취/김정일 건강이상,정치일정 갈등 관측도
김일성 장례식이 갑자기 이틀 연기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장례식 연기가 주민들의 조문행렬이 늘어 『인민들의 절절한 심정과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자발적이건,동원된 것이건 그들의 보도대로 1천7백만명이 조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면 장례식 연기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 최고지도자들의 그간의 장례식을 보더라도 결정한 장례를 연기하거나「12일장」으로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모든 정치행위를 전략·전술적으로 파악하는 북한지도부의「정치행태」를 감안하면 장례식 기간설정이나 이번 연기에도 복선이 깔려있을 수 있다.
이미 북한은 11일 오후11시에 TV로 김정일의 김일성빈소 방문 모습을 내보내면서 정치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있음을 안팎에 과시하는 정치적 계산을 보여주었다.
즉 한국을 비롯한 서방언론들이 TV화면 분석을 통해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분명하고 더욱이 단일지도체제가 확립되었음을 관측토록 했다.
김일성사망 관련 보도에서 북한이 군부를 포함한 각계 지도자들의 김정일을 향한 충성맹세가 잇따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지도부는 김일성사망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례식 연기 이유도 몇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우선 김일성 조문과 관련,한국내에서 일고 있는 파문이 더 확산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한국은 야당의원들이 국회에서『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조문이 필요하다』고 한 질문를 계기로 정계가 시끄럽고 재야의 조문단 파견 주장에 정부가 강경대처하는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여기에 박보희 세계일보사장이 취재및 조문차 평양을 방문했고,일부 대학에선 분향소를 설치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이름으로 한국의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나 개인들의 조문방북을 환영한다고 나섰고 이번에 장례식 연기를 발표했다.
장례식의 이틀 연기가 한국내의 조문논란 불씨를 더욱 거세게 하기에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일단 17일에 장례식을 치르면 한국에서의 정치쟁점도 슬며시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듯하다.
생전에 통일전선 전술에 집착해온 김일성은 죽어서도 후계자에 의해 대남사업에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방송들이 대남비방을 재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음으로 북한은 김정일을 중심으로「일심단결」 분위기를 만들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애도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엔 17일에 장례식과 추도대회를 함께 치르기로 했다가 이번에 19일의 장례식과는 별도로 20일에 김일성 추도대회를 갖기로 한 것은 김일성 사망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장례식과 추도대회의 분리는 장례식날은 「눈물의 인산인해」를 만들고 추도대회에선 소위 김일성의「혁명위업」을 높이 평가하고 『혁명위업의 계승이 중요하다』며 김정일중심의 일심단결을 촉구하는 분위기 전환의 집회로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추도대회의 여세를 몰아 노동당 핵심지도자들의 비상확대정치국회의의「김정일추대」결정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라는 당·정 정치집회에서 채택케 하는 잇따른 정치행사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한편 일부 관측통들은 김정일의 건강에 의심을 보내거나 장례식절차(김일성시신 보관방식등)나 그 뒤의 정치일정에 의견차가 있어 이틀간 연기한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하고 있다.
일부 관측통들은 김정일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모두 승계할지,이를 분리할지가 여전히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확대해석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지난 1주일간의 북한동정은 김정일의 단일권력승계로 굳어진게 분명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며,따라서 장례식 연기는 한국사회 내부의 교란과 김정일의 권력기반 다지기를 위한 측면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19일 장례식과 20일 김일성 추도대회는 향후 북한의 권력구도와 정치일정에 중요한 점들을 시사할 것으로 보인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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