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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 역사를 걷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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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권이, 선화, 수진이, 아름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름이 있듯, 우리가 매일 걷는 길에도 각각의 고유한 이름이 있다. 한창 우리말 이름 짓기 바람이 불었을 때 전국 각지의 길에도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운 우리말 이름들이 붙었다. 오랫동안 읍·면·동·번지로 표기하던 주소도 이제 곧 길(도로) 이름을 표기하는 것으로 바뀔 예정이다.
언젠가 인쇄물을 찾으러 충무로에 갔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충무로라 하면 ‘충무공’ 이순신의 ‘충무’인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세종로 한복판에 서 있는데, 어째서 이곳이 충무로이지?’ 퇴계, 율곡, 원효, 이들은 역사 속의 인물들인 동시에 매우 친숙한 거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거리는 언제부터, 어떻게, 왜 이렇게 명명된 것일까?
오늘날 서울의 거리명은 1946년에 생겼다. 이는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을 붙여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동시에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되새긴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2007년 현재 서울시에는 작은 도로와 골목길을 포함하면 약 2만여 개의 길이 나있고, 그 중 간선도로는 260여 개다. 그 가운데 인물명이 붙은 간선도로는 32곳으로, 대부분 부근에 그 인물의 출생지나 묘사적이 있다.

■ 삼국시대
-원효의 ‘원효로’ : 광복 후, 1946년에 ‘원정’에서 ‘원효로’로 변경되었는데. 조선시대의 명칭에서도 ‘원(元)’이 들어간 지명은 보이지 않아 원효로의 유래를 확인 할 수는 없다. 당시 문교부장관이 불교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원효를 추천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결국 가로명과 원효대사는 직접적으로 상관관계가 없는 셈이다.

■ 고려시대


-강감찬의 ‘낙성대길’ : 봉천동 산48번지에 위치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호 낙성대(落星垈)에서 유래된 거리명이다. 낙성대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의 출생지로, 장군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관악구에는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길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은천길’이다. 봉천동 인근에 위치한 길로 장군의 초명인 은천(殷川)을 인용한 것이다.
-이집의 ‘둔촌로’ : 고려 말의 학자이자 정치가 이집이 이 지역에 살았는데 그의 호가 둔촌(遁村)이었다. 이집의 호가 처음부터 둔촌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집의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성로(成老), 호는 묵암자(墨巖子)였다. 그런데 신돈이 득세하던 때 그를 비판했다가 자신을 죽일 것을 걱정하여 ‘은둔(隱遁)’했다가 돌아와서, 이름은 집(集), 자는 호연(浩然), 호는 둔촌(遁村)으로 고쳤다고 한다.

# 조선시대 인물이 들어간 가로명
정도전의 삼봉길


종로1가 종각역에서 안국동사거리 방향으로 50m즘 가다보면 종로구청 방향으로 표지판이 나있는 길이 삼봉길이다. 삼봉은 조선왕조 개국의 1등 공신이자 개국 초 수도 서울인 한양을 건설한 주인공 정도전의 호.
현재 종로구청, 종로소방서를 중심으로 그 일대가 삼봉 정도전의 집터였다고 한다. 정도전은 개국공신으로 봉해져 25구의 노비와 전지(田地) 200결(結)의 토지를 하사받았는데 이는 상당한 규모에 이른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 의하면 중부학당(성균관 부속기관) 터는 정도전 집의 서당 자리요, 제용감(궁궐내 포목·인삼 공급과 신하에게 하사하는 의복 관련 일을 담당)이 자리잡은 터는 정도전의 안채(살림집) 자리요, 사복시(마구·목장의 일 담당)는 그의 마구간 자리였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세종로

세종로(世宗路)라는 명칭은 조선왕조 제4대왕인 세종의 묘호를 따온 것이다.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과 정문 광화문을 나서는 길로 이곳에서 가까운 옥인동이 세종대왕의 탄생지이다. 세종로는 조선시대 ‘육조거리’ 또는 ‘육조 앞’이라 불리었으며, 조선시대에도 7궤(軌) 56척(尺)의 한성부 대로로 가장 넓은 길이었다. 세종로는 조선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궁궐과 중앙관아가 배치되어 있어 나라의 상징가로이며, 기점인 광화문사거리는 우리나라 도로의 기준점(도로원표)이다.

한명회 의 압구정로
압구정동은 조선 초기의 권신이며 척신이었던 한명회가 ‘기러기와 친하게 지내련다’는의미를 담아 세운 정자 압구정(狎鷗亭)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압구정로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앞을 지나는 도로를 말한다.

사육신의 충신로
압구정로를 따라 서쪽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현충로에 이어 충신로(현재는 노량진로)가 나오는데, 이 도로의 한강변에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의 묘가 있다.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를 시도하다가 정치투쟁에서 패배하여 죽게 된 6명의 문무 관인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들의 무덤이 왜 한강변의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단종 복위 사건 이후로 한명회와 사육신의 운명은 서로 갈렸고, 이제는 서울의 반대편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충무공 이순신 과 충무로
하지만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충무공의 이름을 따 충무로라 지었다. 근처 마른내골은 이순신 이 태어났던 곳으로 지금도 명보극장 앞에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라는 표석이 있다. 일제 강점기 동안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혼마치라고 부르기도 했다.

*역사 인물에서 유래된 32곳의 가로명

세종대왕의 '세종로' / 허위의 '왕산로' / 조선조 유학자 이이 의 '율곡로' / 김정희 의 '추사로' /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의 '다산로' / 진흥왕의 '진흥로' / 조선조 개국공신 정도전의 '삼봉길' / 송시열의 '우암길' / 이황의 '퇴계로' / 을지문덕의 '을지로' / 세종 때 학자 최만리의 '만리재길' / 시인 김정식 의 '소월길' / 아동문학가 방정환의 '소파길' /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길' / 충무공 이순신의 '충무로' / 김구 의 '백범로' / 원효대사의 '원효로' /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김정호 의 '고산자로' /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의 '대건로' / 우리나라 3대 악성 박연 의 '난계로' / 청백리 유관의 '하정로' / 정선의 '겸재길' / 서거정의 '사가정길' / 무학대사의 '무학로' / 민영환의 '충정로' / 이지함의 '토정길' /강감찬 의 '은천로' / 강홍립의 '난곡길' /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도산대로' / 효령대군의 '효령로' / 신사임당의 '사임당길' /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세 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삼학사길' (이상 32개)

참고서적. <서울 가로명에서 만나는 역사 인물>,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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