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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참함 리얼하게 그려 태극기 휘날리며가 작품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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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 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집결호’의 펑 샤오강(중국) 감독. 중국 최고의 흥행감독이다. [사진=송봉근 기자]

“전쟁의 비참함 리얼하게 그려 태극기 휘날리며가 작품 모델”

 “전쟁의 느낌,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지 리얼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남·북한도 평화적으로 통일이 됐으면 합니다.”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집결호’의 펑샤오강(49) 감독을 개막 전 따로 만났다. 흔히 ‘중국의 스필버그’ ‘중국의 강제규’로 불리는 중국의 대표적인 대중영화 감독이다. 한국에는 지난해 개봉한 비극적 서사극 ‘야연’으로 알려졌지만 본래 유명세를 얻은 것은 코미디 덕분이다. 특히 그는 1997년 코미디 ‘갑방을방’로 대히트를 쳤다. 중국 극장가에서 연말연시 대목에 자국영화가 대흥행하는 전통을 만든 시발점으로 꼽힌다.

 ‘집결호’는 이런 감독의 이력에서 남다른 작품이다. 48년 중국인민해방군과 국민당이 맞붙었던 치열한 실제전투를 다룬 전쟁영화다. 이처럼 현대사를 소재로 삼은 것은 그 동안 장이머우나 첸카이거의 작품을 비롯한 중국산 블록버스터가 대개 사극 위주였던 것에 비해 남다른 점이다.

 펑 감독은 “정부가 주도하는 영화가 아니라 민간자본이 투자하는 상업영화에서는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제작비 1천만 달러(약 92억원)를 들인 중국판 블록버스터이자, 촬영 기간만도 10개월에 달하는 대작이다.

 영화에는 전쟁영화 특유의 살벌한 스펙터클과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병사들의 인간적인 이야기가 고루 담겼다. 집결호, 즉 퇴각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부대원이 전멸하고, 이후 유일한 생존자인 부대장이 전우들의 흔적을 되찾으려 애쓰는 줄거리다. 감독은 “잊혀진 영웅의 이야기, 시대를 잘못 만나 좌절하고, 거대한 집단과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집결호’는 최근의 중국 블록버스터와 달리 해외에서 알만한 대스타를 기용하지 않았다. TV드라마에서 주목 받는 신인도 있다. 특히 중대장 역할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장한위는 중국 내에서 외화 더빙으로 유명한 성우 출신이다.

감독은 “잠꼬대까지 할 정도 인물에 몰입해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었다”고 칭찬했다. 이어 “모두들 나를 전적으로 믿고 최소한의 출연료만 받아 제작비를 크게 아낄 수 있었다”며 “대스타가 나왔다면 그 출연료만도 제작비의 절반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결호’는 특수효과·음향·분장 등을 한국 제작진이 맡았다. 모두 한국전쟁을 다룬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일했던 스태프들이다. 감독조차 “‘태극기 휘날리며’를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감독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영화인이라는 점에서 통했다”며 “중국에서도 가장 추운 동북지방에서 야외촬영만 4개월을 했는데, 한국인 스태프들이 ‘힘들다’는 말 한 번 없이 인내심을 보여준 것이 너무 감동적”이라고 감사해했다.

펑 감독은 “부산영화제에 중국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는 처음”이라며 “오늘은 감독으로서 내 경축일 같은 날”이라고 기뻐했다.

 “개막작이 16분 만에 매진됐다고 해서 작은 극장인 줄 알았는데 부산에 와보니 수천 명 앞에서 야외상영을 하는 것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에서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라서 관객들의 반응이 두렵기도 합니다.”

 ‘집결호’는 중국에서 12월 하순에 개봉할 예정. 한국 개봉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부산=이후남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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