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반포지교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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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원앙은 부부끼리 해로하는 의좋은 새로 유명하지만,실은 해마다짝을 바꾼다고 한다.인간의 고정관념 속에 미담의 주인공으로 자리잡은 동식물들의 생태가 인간을 교훈할 목적으로 인간이 만든 허구임이 밝혀지는 일이 종종 있다.그 대표적인 예가 孝鳥로 불리는 까마귀의 경우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자고 조르기 시작했다.늙고 병든 부모를 상대로 부양비의 반환을 청구한 어떤 사람의이야기가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과 공교롭게도 시기적으로 일치했다. 퇴직금이나 연금의 혜택하고는 인연이 없는 남편의 직업 때문에 노후가 캄캄해 저러나 싶어 꽤 자존심이 상했다.늙은 후에도 마누라 한 입쯤 책임질 자신 있으니 그 따위 것 필요없다고큰소리쳤다.
자식들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부모로서 품위 있는 노후를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식들로부터 독립할 자금이 필요하다며 아내는 쉽사리 주장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나는 자식들에게 묻고 싶었다.얘들아,엄마 아빠가 늙고 병들면너희도 요담에 법에다 호소해서 부양비 반환을 청구할테냐? 한참생각한 끝에 나는 자식들을 불러 직접 확인하는 대신 슬그머니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나는 내 자식들을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노라고 여태껏 자부하며살아온 편이었다.그런데 막상 노후에 대한 약간의 대비책을 세우고 나니까 안심이 되긴커녕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이었다.세태의 변화에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
反哺之孝(반포지효)는 턱도 없는 이야기다.금수도 효도할 줄 아는 판에 하물며,하는 식으로 흉측하고 불길한 까마귀를 끌어다가 효조의 대표를 삼음으로써 자식 세대에 대한 교훈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어른들의 사고가 꾸며낸 허구임에 틀림 없다.
까마귀한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금수 종류에 효의 개념이 결코 있을리 없다.늙은 어미한테 먹이를 물어다 줄줄 아는 동물은 오직 인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늘날의 부모 세대는자식 세대한테 곧이곧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자기가까마귀에 속하는 지,인간에 속하는 지를 자식들 스스로 판단하게끔 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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