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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성과 나와야" 담담한 시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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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일 오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환영 인파가 남북 정상회담 방북단을 환송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잠시 내려 환송 인파들과 인사를 나눴다. [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 첫날인 2일 시민들은 TV와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 전달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모습을 지켜봤다. 진보 성향의 단체들은 방북단을 격려하는 환영 행사를, 보수 단체들은 이를 비판하는 항의 시위를 각각 열었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있던 시민들은 대형TV 앞에 모여 회담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노 대통령과 방북단을 맞이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 나오자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도 했다. 많은 시민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부산발 열차에서 내린 박복선(60.여)씨는 "어쨌거나 정상회담이 7년 만에 다시 열렸다는 사실은 반갑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성과가 나오느냐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광운(57.서울 청파동)씨는 "아무래도 두 번째 회담이다 보니 감흥이 떨어진다"며 "노 대통령의 지지도 높지 않아 큰 행사라는 느낌이 덜하다"고 털어놨다.

뉴라이트국민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역 앞에서 ‘북핵 폐기와 국군 포로 송환 등의 의제가 없는 정상회담은 반대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시민들은 '상징적인 만남을 넘어 실질적인 성과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성삼수(29)씨는 "첫 정상회담 이후 잠시 상호 긴장이 완화되는 듯하다 곧 서해교전이 터졌다"며 "이번만큼은 평화를 보장하는 확실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향민이나 납북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양이 고향인 윤죽남(67.대전 장지동)씨는 "나 역시 죽기 전에 대통령처럼 군사분계선을 넘어 친지들을 만나고 싶다"며 "기대만 부풀렸다 실망이 더 컸던 2000년의 6.15 정상회담과는 달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납북된 김교현(59)씨는 "솔직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며 "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당당하게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송환과 생사 확인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정상 일거수일투족에 '촌평'=시민과 네티즌은 두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날 노 대통령을 영접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두고 일부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열렬한 포옹으로 맞이했던 7년 전에 비교하며 '실망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학원생 정재엽(32)씨는 "'깜짝 영접' '깜짝 동승' 등 파격적인 일이 많았던 2000년에 비해 특별히 눈길을 끄는 일이 없어 다소 실망했다"고 말했다.

네티즌 사이에선 "걸음걸이처럼 한 걸음씩 차근차근 나아가면 통일이 다가올 것"(아이디 pollo) 같은 긍정적인 의견과 "극진하게 대접한다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대한다는 느낌이다"(미래소년포비)는 등 불만 섞인 반응으로 나뉘었다. 일부는 김 위원장이 얼굴에 웃음을 띄지 않는 모습을 보며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김 위원장이) 소홀한 것 아니냐"(gojongsu04)며 꼬집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놓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앞서 국민과 민족을 생각할 때 박수를 보낼 만하다"(김성원)는 주장과 "감성 이벤트에 불과하다"(김선종)는 지적이 엇갈렸다.

◆보수-진보 단체 '찬반' 행사=참여정부 평가포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회원 200여 명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였다. 이들은 '5천만 개의 마음이 당신과 함께 갑니다'라고 적힌 노란색 현수막을 걸고 시민들에게 풍선과 한반도기를 나눠줬다.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도 정상회담을 환영한다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같은 시각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 100여 명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행렬이 지나가는 순간 이들은 "북핵 폐기 없이 평화 없다" "국민 동의 없는 천문학적 대북지원 웬 말인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북한 인권운동가를 자칭하는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은 이날 낮 12시40분쯤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난입했다. 그는 10여분간 "쇼에 불과한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다 진행 요원들에게 끌려나갔다. 폴러첸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북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며 "실질적인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대에 부푼 민통선 주민들=이날 오전 8시40분쯤 노 대통령 일행이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통일대교 남단에 들어서자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내 통일촌 주민 100여 명이 도로 양쪽에 길게 늘어서 태극기와 풍선을 흔들며 회담의 성공을 기원했다. 이들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진행한 환송식 행사에서 500여 명의 시민과 남북 간 평화를 염원하는 600여 개의 풍선을 날렸다.

통일촌 이완배(55) 이장은 "2000년 남북 정상 첫 회담 이후 남북열차가 운행되고 남북도로가 개설되는가 하면 개성공단까지 조성되는 변화가 있었다"며 "이번 정상회담 이후에도 보다 진전된 남북 간의 교류가 이뤄져 통일촌이 남북왕래의 전초기지가 되고 남북 경제가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불과 1~4㎞ 거리에 있는 민통선 북쪽 지역 대성동마을.통일촌.해마루촌 3개 마을 주민들은 "이번 회담에서도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익진.천인성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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