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先例깬 전격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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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장 10여시간을 끈 28일의 남북예비접촉 회의가 끝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판문점과 남북대화사무국 주변에서조차 그 결과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회담이 열릴 때마다 잔뜩 기대를 품었다간 번번이 실망으로 끝나야 했던 탓인지 이날 TV 모니터를 통해 회의진행 상황을 일일이 지켜보던 남북회담사무국은 특히 시종일관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기에 바빴다.
통일원의 한 간부는 남북회담사무국 1층에 마련된 기자실에 들러『오늘 완전한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기사방향을「바로잡기」에 열중할 정도였다.
판문점과 남북회담사무국에 흩어져 취재중인 기자들도 회의분위기가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데는 공감하면서도 북한 전문가들의 이같은 조언(?)에 영향을 받아 전격적인 합의도출에 대해서는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군더더기 없는 완전한 합의 도출이었다.
당장 관계자들부터 정상회담개최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 어리둥절한 모습도 역력했다.
그도 그럴것이 종래의 남북회담 전례를 생각하면 단하루만의 합의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다 이날 회의진행과정은 과거의 회담과 별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지불식간에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있지 못했던 결과다.
북한은 예상대로 8월15일 평양개최를 최초제안으로 들고 나왔고 오전회의가 끝날때쯤 7월25일 평양에서 1차 정상회담을 갖자는 우리측 제의를 수용하면서도『쌍방 정상회담분위기를 깨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구를 합의서에 넣자고 새로운 조건을 내걸어 우리측 대표단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종래의 관념에서 북한의 이같은 태도를 보면 이날 회의에서의 합의도출은 어렵다는 판단도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예측이 틀리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지적을 받은 통일원의 한 간부는『그동안 수없이 남북회담을 치러 보았지만 이번같은 경우는처음 보았다』면서『그전같았으면 회담은 깨졌을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시인했다.
과거의 체험도 중요하지만 고정관념을 깨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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