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마비 파장/올 노사관계 「어두운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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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법노조와 타협보다 원칙 고수/정부/전국연대파업 포함 강경한 입장/전노대
철도기관사들이 파업에 들어간데 이어 서울지하철노조도 23일 11차 교섭이 결렬될 경우 24일 새벽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올해 노사관계는 중대한 국면으로 돌입했다.
비교적 순탄할 것으로 전망됐던 올해 노사관계는 전노대를 중심으로 한 강성노조의 대응 여하에 따라 전국동시파업으로 연결돼 87년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을 우려가 커졌다.노동계에서 나돌던 이른바 6월위기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외노조와 타협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노사안정을 위해 법과 원칙을 고수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노대는 23일 성명을 통해 정부조치를 『당초부터 신공안 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철도와 지하철 파업을 유도하는 음모에 따른 계획된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예정대로 대기업까지를 포함한 전국적인 공동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강경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지하철·철도분규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불법쟁의에 대한 엄단 의지와 전노대의 강경투쟁 방침이 접점을 찾지 못한채 평행선을 그어 왔지만 파업 직전에 극적인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도 점쳐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최근 들어 전노대가 표면적으로는 강경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실제로는 제2노총 건설이라는 당면목표를 의식,최악의 사태를막기 위해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사태해결을 모색하는 온건한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전노대는 22일 지하철분규와 관련한 정부의 직권중재신청이 있은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울지하철에 대한 직권중재 요청을 중단하고 노사자율교섭을 보장할 것 ▲전기협과 철도청의 교섭창구를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노동계에서는 전노대가 지금까지 전면 거부해 온 직권중재에 대해「무조건 철회」가 아닌「철회 또는 중재활동 중단」을 요구한 것은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입장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바탕에서 나온 신축적인 요구로 받아들였다.또 전기협의 교섭대표권 인정을 요구했던 기존입장을 수정,철도노조를 축으로한 교섭을 벌이되 전기협 간부들이 50%의 지분으로 참여하는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도 상당한 변화로 평가됐었다.
그러나 정부의 공권력투입 조치로 전노대의 막판 해결 카드는 거부된 셈이고 철도·지하철노조에 대한 중재력도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권력에 의한 사태해결이라는 수순은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온 태도로 미뤄 어느정도 예견됐던 것이었다.
교섭권한이 없는 법외노동단체인 전기협을 협상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고 합법노조인 철도노조와 특별협상까지 벌여가면서 이들이 요구한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한만큼 추가협상은 필요없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무엇보다 법적으로 복수노조가 인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시적인 사태해결을 위해 법외노조를 교섭파트너로 삼는다면 법과 원칙이 무너지게 된다는 점도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기협은 파업예정일인 27일 이전이라도 집행부가 구속될 경우 즉각적인 파업을 벌인다는 방침에 따라 23일 공권력이 투입되자 즉각파업에 돌입했고,서울지하철노조도 23일의 11차 교섭이 결렬될 경우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노대는 25일 1천1백개 산하노조대표자 비상총회를 열고 구체적인 투쟁일정을 논의할 계획이어서 대기업노조까지를 포함한 전국적인 차원의 연대파업 돌입 여부가 주목된다.
이미 전노대 산하의 대기업노조들은 상당수가 전면 또는 부분파업에 들어갔거나 들어갈 예정이다.
대우조선노조는 21일 전노대 산하 대기업노조로는 처음으로 2시간동안 부분파업을 벌였고 현대중공업노조도 23일 쟁의행위를 묻는 조합원찬반투표를 실시,쟁의가 결정될 경우 24일 오전에 3시간동안 부분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기아자동차노조도 2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쟁의발생을 결의한 뒤 이날부터 24일까지 연장근로를 거부키로 했다.
또 대우기전도 이미 20일부터 임금인상 17.3%,해고자 복직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들어갔고 쟁의행위를 결의,언제든지 파업에 들어갈 수 있는 노조는 만도기계·금호노조등 10여개 업체에 달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확고한 것으로 보여 전국적인 규모의 노사분규로 확산될지 여부는 전노대를 중심으로 한 강성노조들의 대응방식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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