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逆手順의 분단과 해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18일은 오전과 오후에 걸쳐 두편의 드라마가 전개된 날이었다.「믿기 어려운 무승부」를 연출했던 축구처럼 南北관계에도극적인 反轉이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들은 볼리비아와의 승부를 앞둔 축구선수들처럼 기대섞인 마음으로 분단후 처음인 南北 頂上회담 개최를 기다리고 있다.이 모처럼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첫째로 남북정상의 정치적 결단과 의지,그리고 다음으로 우리들 보통사람 들이 만들어낼 분위기에 달렸다.
金泳三대통령이 金日成주석의 제의를 즉각 수락한 것은 잘한 일이며 조건없이 수락한 것은 더 더욱 잘한 일이다.『아래 사람들에게 맡겨두니 잘 안되더라』고 했다는 金주석의 말처럼 예비접촉에서 실무회담으로,실무회담에서 다시 고위급 회담으 로 단계를 높여가는 식의 순서를 밟아서는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나는 화살은 영원히 표적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제논의 逆理는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이미 남북은 그러한 단계적 접근이나 사전 議題설정 방식을 통해서는 頂上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南北정상이 조건없이 만나기로 의견이 합치된 이 시점에서도 사전 의제설정 필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 종래 의 수순을 밟으려 했었다면 또 한번 不信의 골만 깊게 해놓았을 것이란 걸알 수 있다.
南北문제는 發想의 전환 없이는 풀리지 않게 되어있다.이제까지우리들은 南北이 평화적 共存을 하려면 먼저 不信을 해소하고 그바탕 위에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논리에 매달려 왔다.논리 그 자체로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지당 해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결상태의 두 집단이나 국가가 그러한 단계를 거쳐 화해를 이룩한 예는 드물다.반대로 그 逆順을 밟아 성공한 예는 많다.지난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맺은 평화협정이 그 가운데 하나다.이스라엘과 P LO도 「先신뢰구축 後공존」의 수순을 밟으려 들었더라면 中東평화의 실마리는아직도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두 정상이「사진만 찍고 마는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물론 그럴 수도 있다.그러나 그런 최악의 경우라 해도 만나는것이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美.蘇간의 길고 긴 軍縮회담을 지켜본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은문제 해결의 열쇠는 최고 통치자의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었다.어느모로 보나 南北문제의 해결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그런 이상 우선 만나고 봐야 한다.그리고 가능한한 자주 만나야 한다.한번의 만남 만으로도 큰 성과를 거둔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스러운 일은 없다.그러나 남북문제의 성격상 한번의 만남으로 성과가 클 리는 없다.한 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두정상이 서로의 생각을 깊이있게,그 리고 제한없이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첫 만남은 의미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욕심을 내자면 이 기회에 두 정상은 민족의 장래를 위한「선물」을 준비하는 선에까지 나아갔으면 한다.우리가 北에 바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核투명성 보장일 것이고,北이 南에 바라는 것은 軍縮일 것이다.이 둘은 南北의 평화공존이 이 루어지려면 언젠가는 반드시「교환」되어야 할 것들이다.남북이 核을 가지고 대치하는 것도,세계의 무기생산업자나 배불리도록 한해 예산의 25%와 50%를 군사비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도 민족 전체의 장래로 보면 어리석고 불행하기 짝이 없 는 일이다.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첫 만남 만으로 풀릴 리는 없겠으나 적어도 두 정상이 진지하게 논의는 해야 마땅하고 그 실마리를 푼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적 意志가 열쇠 숭늉부터 마신 김에 한가지만 더 주문한다면 南北정상간에 핫라인이라도 가설됐으면 좋겠다.핫라인의 가설은 그 실용적 가치 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상징적.심리적효과가 크고 의미있는 것이다.
어떻든 좋다.분단의 맘모스를 빙하로부터 꺼내는 길은 逆手順과逆發想으로부터 나와야 할 것이고,이번 정상회담이 그 첫 걸음이되기를 기대한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