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시기 정상회담 후유증 없도록 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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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02면

주요국(G8) 정상회의의 실패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타협이 이뤄지지 않아 공동성명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시장은 요동치고 세계 전체가 구심력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개발도상국 원조나 환경문제 대응이 멈출 수도 있습니다. 회의에서 격론이 오가도 마지막에 결속을 연출하는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G8은 회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셰르파(Sherpa)입니다. 각국 정상의 개인대표지요. 직책은 장관, 차관, 특보 등 다양합니다. 원래 셰르파는 에베레스트 산기슭에 사는 티베트계 네팔인을 말합니다. 이들이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등정 길잡이를 하면서 안내인이라는 뜻이 붙여졌지요. G8은 여기에 착안해 셰르파를 두었다고 합니다. 명칭은 그대로입니다. 각국 셰르파는 1년에 한 차례인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두 달에 한 번 정도 회담합니다. 의제를 사전에 정리하고 공동성명 문안을 조율하지요. 셰르파 회의는 정상회의의 축소판이자 안전판입니다.

세계 각국의 양자 정상회담은 어떨까요. 숱한 실무협의를 거쳐 이뤄지는 게 관례입니다. 어지간해서는 정상회담이 실패했다는 얘기가 안 나오는 이유입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청와대ㆍ정부청사와 평양의 노동당 움직임이 다르지 않겠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바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바쁠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북한의 정보기관들은 노 대통령의 스타일과 취미 등을 파고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북 간에 의제와 발표문안이 사전에 깊숙이 조율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특사로 방북했다지만 정상회담의 밑그림까지 그리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 위원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유일 영도체계 때문이겠지요. 회담 결과물은 톱-다운 방식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 당국자들도 내놓고 회담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도 이제부터는 보통의 정상회담이 되도록 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합니다. 정상 간의 급작스러운 조율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내다보면 남북이 해석을 달리할 수도, 남남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회담에 임하는 노 대통령의 어깨는 무거울 것입니다. 여기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외교 5원칙을 소개합니다. ① 국력 이상의 대외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② 외교가 도박이 돼서는 안 된다. ③ 늘 정보 입수와 정책 발신에 충실하라. ④ 세계사의 정통적 조류를 벗어나지 마라. ⑤ 내정을 외교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미묘한 시기에 열리는 회담을 맞아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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