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56. 6인의 '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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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KAIST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 MRI의 전자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 [KIST 이순재 사진영상 담당 제공]

거액을 들여 거대한 전자석을 들여와 MRI를 한다니까 화학과 교수를 비롯한 다른 교수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특히 NMR (핵자기공명, 화학분석에 사용해 온 기기)을 많이 사용하던 교수들이 나를 헐뜯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조 교수는 NMR 원리도 모르면서 그걸 한다고 하는데 아마 헛고생만 하고 말 거야” “아까운 연구비만 날리게 됐다”는 등 험담은 끝이 없었다.

기존 NMR에서는 몸 속의 물 분자에 골고루 같은 자장을 가해야 되는데 영상용으로 NMR을 쓰기 위해서는 일부러 이 균형을 깨야 한다니까 화학과 교수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그들의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연구실을 호화판으로 꾸미는가 하면 다른 교수들보다 월등히 많은 10만 달러의 연구 정착금을 받는 내가 그들의 눈에는 꽤나 못 마땅하게 비쳤던 것 같다. 그러던 참에 MRI를 한다니 이때다 싶어 나를 자주 ‘안주’로 삼은 것이다. 더구나 전자석 하나가 한두 푼도 아닌, 당시 서울 압구정동에서 분양 중이던 대형 현대아파트를 여러 채 살 수 있는 거액을 주고 사왔다니 더욱 더 난리였다.

KAIST 원장뿐 아니라 과기처(현재 과학기술부)도 나의 도발적인 연구 방향과 실행을 걱정했던 모양이다. 교수들의 험담이 공무원들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걱정스럽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그땐 MRI 원리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용제품은 개발되지도 않았다. 연구 논문이 막 나오던 단계였다.

나는 그런 험담을 들으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사람은 보고 듣는 만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화학과 교수들이야 그들의 세계 밖에 모르니 내가 하려는 새로운 분야를 알 턱이 없었다. 그들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건 뻔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만든 MRI로 인체 영상을 찍어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는데 너희들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고 말 거다”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의지를 다졌다. 나는 그때까지 대형 프로젝트를 맡아 실패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MRI를 시작하기 전에 관련 지식을 충분히 쌓은 터라 승산이 크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내가 이미 개발해본 CT와 PET의 수학적 해법을 MRI에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KAIST 교수들은 모르고 있는 듯했다. 하긴 남의 연구 능력과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렇다고 우선 말하기 좋다고 험담부터 해대는 교수들을 보니 기가 막혔다.

나는 6인의 ‘전사(대학원생)’들에게 당부했다. “가난한 우리나라에서 10만 달러짜리 연구를 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실패하면 앞으로 더 이상 가지 못한다.”

나종범 KAIST 교수, 민형복 성균관대 교수, 재미 사업가 이완씨, 이병욱 이화여대 교수, 박현욱 KAIST 교수, 오창현 고려대 교수 등이 당시 6인의 전사였다. 이들은 나의 든든한 동반자였다. 40대인 나와 20대인 이들은 겁이 없었다. MRI를 둘러싼 분분한 말 속에서 세계와의 경쟁은 시작됐다.

조창희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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