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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를 넘었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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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쭙잖은 외국어 실력으로 몇 년 전 책 한 권을 번역했다. 혼났다. 괜히 손댔다 싶어 후회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출판사의 채근을 받아가며 마감을 몇 차례 넘기고 나서야 간신히 작업을 끝냈다. 그때부터 전문 번역가나 통역사에게 일종의 경외감 같은 것을 품게 됐다.

그렇다고 통·번역이 마냥 고되고 지루한 일만은 아닌 듯하다. 외국어와 자국어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으니까. 일본어·러시아어 동시통역사로 활약한 일본인 요네하라 마리의 저서 『마녀의 한 다스』를 읽다가 포복절도한 적이 있다. 1956년 조인된 일·소 공동선언에 따라 국교를 재개한 일본과 소련(러시아)은 각각 상대국 수도에 대사관을 설치하게 됐다. 소련은 크렘린궁이 바라다 보이는 모스크바 강기슭의 훌륭한 건물을 일본에 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건물 주소를 전해 들은 일본이 즉각 거절했다. 주소지가 ‘모스크바 야키만코 거리 ○○번지’였기 때문이었다. 일본어로 ‘야키’는 ‘구운’이란 뜻이고 ‘만코’는 지면에는 옮기기 힘든 단어다. 결국 일본 대사관은 입지가 좋지 않은 현재의 칼라시니코프 옆골목에 들어서게 됐다는 것이다.

통역과 번역은 바깥 사람의 말과 지식을 우리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잘된 번역은 웬만한 논문 이상의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통·번역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또 있다. 우리 한국어권 내에서의 소통을 원활히 하는 일이다. 그 핵심에 한자 실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명박·박근혜씨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얼마 전, 한 종합일간지 1면에 “여권 자료로 공격, 박근혜쪽 금도 넘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인터뷰한 기사였다. 이씨가 박근혜씨 진영의 검증 공세에 대해 “금도를 넘고 있다”고 경고했다는 요지였다. 1면에 이어 5면에는 상세한 인터뷰가 실렸다. 나는 이씨가 ‘금도(襟度·남을 용납할 만한 도량)’라는 말의 뜻을 모르고 실수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5면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기자가 이 전 시장에게 “박 전 대표 쪽의 의혹 공세가 금도를 넘었다고 보나”라고 질문하자 이씨가 “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인터뷰한 기자 자신이 ‘금도’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도는 보여주거나 발휘하는 것이지 ‘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떤 신문의 사설에도 ‘금도를 한참 넘어선 일이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이가 금도의 한자를 ‘금도(禁度)’ 정도로 착각하는 듯하다. 방송 뉴스에서는 ‘부상당했다’는 틀린 표현이 ‘부상했다’를 몰아내는 데 거의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동료 기자들에게 ‘금도’를 발휘하지 못해 미안하다).

기자들도 실수하는 판이니 대학생은 오죽하겠는가. 신문사 수습기자 채용시험에 작문 과목이 있는데, 채점을 해보면 대학생들의 형편없는 한자 실력을 실감하게 된다. 한자는 쓰지 않고 한글로만 표현하는데도 ‘반신불구(반신불수)’ ‘고분분투(고군분투)’ ‘부지부식간에(부지불식간에)’ ‘유래(유례)없는 참사’ ‘인명은 제천(재천)’ 같은 잘못된 표기가 자주 눈에 띈다. 한자를 거의 접하지 않고 자란 탓이리라.

한자어는 국어사전 표제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한자를 모르면 정확하게 의사를 소통하기 어려울 게 뻔하다. 그야말로 ‘반신불구 한국어’가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요즘 초·중·고교생 사이에 한자 배우기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일부 기업은 채용 때 한자자격증 소지자에게 가산점도 준다. 어제 교육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9월 대입수능 모의평가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서 한문을 택한 학생이 20.8%로 일본어(36.3%)에 이어 2위였다고 한다. 반가운 추세다.

한자·한문과 한자어는 한국어의 소중한 자산이지 버릴 자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아직도 한자어와 순 우리말을 갈등이나 상충관계로 본다. 게다가 어설픈 민족주의까지 섞어 들이민다. 그런 분들을 보면 그저 입맛이 쓸 뿐이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