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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EA 탈퇴 국제사회 파문/「벼랑끝 외교」로 미와 직접협상 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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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도 무엇인가/카터 방북 앞두고 나와 속셈 드러나/강경수 반복 효과 미지수/미에 공넘겨… 협상엔 여지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선언으로 파문이 일고 있으나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아니다.
「벼랑끝 외교」의 강경자세를 전면에 내걸면서 타협여지를 좁게 남겨두는 종래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북한 성명의 목표는 간단하다. 강경자세를 고수하며 어떻게 하든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끌어내보자는 것이다.
○안보리제재 불용
북한은 지난해 3월13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뒤 일관되게 대미협상만을 고집해왔다. 그 단적인 예가 IAEA의 북핵사찰인데 지난해와 올해 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도 실은 미­북 제1단계 고위급회담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특수지위」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IAEA 사찰을 한때 허용하면서도 방사화학실험실의 사찰을 상당히 지연시킨 끝에 받아들인 것이나 원자로 연료봉 계측에서 보인 북한의 강경자세로 모두 「대미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끝까지 고수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성명에서 『특수지위하에서 받아오던 담보의 연속성 보장을 위한 사찰을 더이상 지금처럼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힌 것은 지금까지 대미협상의 결과로 사찰을 받았지만 미국이 IAEA와 유엔안보리 제재로 가닥을 잡아가는 상황에서 강경카드로 미국에 협상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식으로 몰아붙이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성명에서 「NPT에 복귀하든가,완전히 탈퇴하든가가 판가름날 때까지」의 전제를 달아 사찰불가를 밝힌 것은 NPT 탈퇴의 유보자세고 이것은 미국과의 협상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또 성명 끝머리에 밝힌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핵문제가 공정하게 해결될 때까지」라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특사자격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 IAEA의 대북제재 결정이후 빈주재 북한대사관 윤호진참사관의 발언에서 IAEA 탈퇴라는 강경수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문제는 북한이 ▲IAEA 탈퇴 ▲더이상의 사찰불가라는 강경카드를 내던진 시점이다.
북한의 강경입장 표명이 미정부의 「사실상 특사자격」으로 15일 방북하는 카터 전 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앞두고 나온 것도 주목된다.
북한전문가 김남식 연구위원(평화연구원)은 『북한이 IAEA의 제재국면에서 미국과의 대화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하고 카터의 평양방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북한의 벼랑끝 외교패턴은 그동안 반복돼왔고 그 효과는 미지수라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같은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난해 NPT 탈퇴선언이라는 강경카드는 대미협상의 길을 여는데 일조했지만 최근 5㎿ 시험원자로의 연료봉 추출을 서둘러 강행한 강경카드는 제재국면을 야기하는 등 북한의 강경수가 그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제재 선전포고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성공시키기 위해 즉 중국과 러시아를 제재결정에 끌어들이기 위한 낮은 단계의 제재를 결정,대북압력을 강화해간다는 한·미의 의도를 북한이 읽고 있는게 분명하다.
북한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초강경입장을 되풀이했다. 이것은 제재참가에 부정적인 중국을 확실히 끌어당기고 낮은 단계 제재와 8자회담을 동시에 고집하는 러시아,그리고 유엔제재외의 한·미·일 3국제재에는 다소 소극적인 일본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제 대미협상을 재촉하며 다른 선택의 여지를 거의 없애버린 북한의 공은 미국에 넘어간 셈이다. 결국 미국의 대응이 벼랑끝으로 치닫는 핵국면의 장래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빈·서울=유재식·유영구기자>
◎탈퇴해도 핵사찰 유효/미에 서면통고로 회원자격 상실/NPT 남는한 기존협정 따라야
북한의 IAEA 탈퇴절차는 간단하다.
IAEA의 가입과 탈퇴절차를 규정해놓은 IAEA의 18조는 『회원국이 탈퇴 통고를 서면으로 규정 수탁국 정부에 제출함으로써 본기구로부터 탈퇴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북한은 자신의 탈퇴의사를 밝힌 서한을 현재 규정 수탁국으로 지정된 미국에 전달하는 순간부터 IAEA의 회원국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여기서 규정 수탁국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IAEA 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문서를 받아 보관해주는 국가를 뜻한다.
○목적·성격 달라
중요한 점은 IAEA를 탈퇴하더라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회원국 지위는 변동이 없으며 사찰 등 핵안전조치 등의 의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는 NPT와 IAEA,그리고 회원국중 3자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IAEA와 NPT체제는 양자간 성격이 중첩되는 부분이 많지만 기본적인 목적과 성격면에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57년 설립,현재 1백22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IAEA가 핵의 평화적 이용촉진을 제1차적 목적으로,오용방지를 부차적 임무로 하고 있다면 70년 발효돼 현재 1백60여 가입국을 거느리고 있는 NPT는 핵확산을 현 수준에서 동결,더이상 보유국이 늘지 않도록 막자는 취지아래 핵기술의 군사적 전용방지를 유일목적으로 한 군축조약이다.
○개별국 동향 감시
양자간 기능이 중첩되는 「핵의 군사적 전용방지」와 관련,NPT가 지향점과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면 IAEA는 핵안전협정을 통해 개별국들의 동향을 기술적으로 감시,통제하게 되며 이를 위한 활동이 바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IAEA는 이같은 NPT와 NPT 회원국간의 약속이행여부를 감시하는 임무를 대행하는 일종의 NPT체제의 용역기관으로 이해하면 된다.
또 IAEA는 자신의 감시활동을 위해 각 회원국과 사찰의 내용·범위를 규정하는 개별협정을 맺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핵안전조치협정(Safeguard Agreement)이다.
○NPT 하부기관
북한이 IAEA를 탈퇴했을 때 가장 큰 관심은 선언의 법적효력과 사찰의 계속 가능성문제.
북한은 여전히 NPT를 완전히 탈퇴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핵안전조치협정에 따른 핵사찰의무는 여전히 유효하다.
IAEA 헌장 26조는 NPT 조약당사국으로 남아있는한 핵안전협정은 계속 유효하다고 못박고 있다.
이는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지 않는한 IAEA의 사찰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IAEA 즉각 탈퇴를 선언하면서 동시에 핵안전조치의 지속성을 위한 사찰도 허용할 수 없다고 별도로 밝히고 있어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핵활용 통보안해
북한은 앞으로 핵활동에 대한 통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편 안보리차원에서도 북한의 IAEA 탈퇴는 대북제재의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유엔은 1장 41조에 세계평화가 위협된다고 판단될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심지어 안보리는 유엔의 비회원국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다.
결국 IAEA가 창설된지 처음인 북한의 탈퇴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대한 평양의 엄포일뿐 북한은 여전히 NPT 회원국으로서 사찰을 받을 의무가 있는 것은 물론 안보리의 대북제재 대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최원기기자>
◎북한 외교부 성명 전문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 서기국은 미국의 대조선 압살정책에 추종하여 공화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엄중히 침해하는 행위를 감행했다.
지난 10일 IAEA 이사회는 핵문제를 걸고 우리의 군사대상들을 개방할 것을 요구하면서 우리에 대한 협조를 중단한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이는 명백히 우리에 대한 기구의 제재이며 본질에 있어서 유엔제재의 전주곡이다.
핵문제 해결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공화국을 고립 압살하려는 미국과 기구 일부 계층의 음모는 드디어 무모한 실천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는 지금까지 특수지위하에서도 핵활동의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기구의 사찰을 받으면 받을수록 압력과 복잡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으며 공화국의 안전과 자주권은 시시각각으로 위협당하고 있다.
오늘 도달한 결론은 기구의 불공정한 테두리안에 얽매여 있을수록 압력은 더해지고 평화적 핵활동도 그만큼 장애만 받게 된다는 것이다.
기구 서기국이 제재 위협으로 전면사찰을 강요한 것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우리 인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어떤 압력이나 제재가 가해질수록 우리의 의사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평화적 핵활동은 그만큼 더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다.
조선외교부는 위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대응하기로 했다는 것을 천명한다.
첫째,IAEA로부터 즉시 탈퇴한다.
지금까지 취해진 기구의 모든 부당한 결의들을 무효로 인정하며 우리는 금후 기구의 어떤 규정이나 결정에도 구속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구가 없이도 자립적인 핵동력 공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며 핵활동분야에서 국제적 협조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
둘째,우리의 특수지위하에서 받아오던 담보의 연속성 보장을 위한 사찰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선언한다.
우리가 NPT에 복귀든가,완전탈피하든가 판가름날 때까지 어떤 부당한 사찰도 허용될 수 없다. 사찰원들도 우리나라에서 더이상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셋째,유엔제재는 곧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재확인한다. 적대세력의 제재조치의 확대에 자위조치의 확대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같은 입장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문제가 공정하게 해결될 때까지 절대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의 사태발전을 예리하게 주시할 것이다.<서울=내외>
□북핵 일지
▲85년12월12일=북한,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92년 1월30일=북한,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 서명
▲4월10일=북한,IAEA 핵안전협정 비준
▲93년 3월12일=북한,NPT 탈퇴선언
▲5월11일=안보리,대북한결의안 채택
▲6월2∼11일=미 북한 고위급회담(뉴욕),북한,NPT 탈퇴유보 발표
▲12월29일=미­북한,뉴욕 추가접촉에서 핵사찰 수용합의
▲94년 1월27일=북한­IAEA,사찰협상 시작
▲1월25일=북한­IAEA 협상 결렬
▲2월15일=IAEA,북한 핵사찰 수용발표
▲3월1∼15일=IAEA 북한 핵사찰 진행(방사화학실험실 시료채 취관련 사찰불충분 발표)
▲3월3∼19일=남북한 특사교환 실무접촉 5회 진행,협상결렬
▲3월24일=IAEA 사무총장 유엔안보리에 사찰결과 보고
▲3월31일=유엔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4월15일=한국,특사교환 철회
▲5월25∼27일=북한­IAEA 평양에서 연료봉 교체 협상
▲5월30일=유엔안보리 의장성명
▲6월 1일=북한,의장성명 반박 담화
▲6월10일=IAEA,대북제재 결의
▲6월13일=북한,IAEA 탈퇴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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