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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천장까지 뜯어보더군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호 20면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은 얼마 전 정신과 병동 천장을 뜯어봐야 했다. 미국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의 심사위원들이 의료서비스 인증 평가를 하면서 이런 요청을 한 것이다. 혹시라도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JCI 심사는 미국에서 파견된 의사·간호사·의료행정가 등 5명의 전문가에 의해 닷새 동안 진행됐다.

BIZ CAFE - JCI 인증 첫 획득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

“심사 당일 아침 ‘응급실을 통해 들어온 40대 뇌졸중 환자를 보자’고 요청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병실까지 가게 되는지, 진료기록은 어떻게 작성되는지, 의료진의 설명은 부족함이 없는지 등등을 꼬치꼬치 따져 물으니 의사·간호사가 죽을 맛이었지요.”

2005년부터 이 병원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박창일(61·사진) 병원장은 혀를 내둘렀다. 이들의 심사 핵심은 ‘환자 우선’이라고 했다.

이런 심사를 거친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JCI로부터 의료서비스 인증을 받았다. JCI는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의료평가기관으로, 인증을 받은 병원은 환자들이 안심하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의료기관의 95%가, 전 세계 25개 나라 125개 병원이 JCI 인증을 받았다.

“국내 의료기관으로는 세브란스병원이 첫 인증 획득입니다. 2000병상이 넘는 대형병원 가운데는 세계 최초이니 세브란스의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지요. 제조업체로 치자면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을 받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세계화에 발맞춰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에게 의료서비스에 관한 한 ‘보증수표’인 셈이지요.”

박 병원장은 “(JCI 인증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JCI의 인증 항목은 모두 1033개, 그중에서도 핵심 기준이 196개에 이른다.

그는 “환경미화원까지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다”며 “인증 비용은 3억원가량이었지만 이를 위해 병원이 투자한 비용은 수십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런 덕분에 세브란스는 여느 병원에 비해 낯선 풍경이 많다. 이곳을 찾는 외래환자는 자신의 이름 표기를 보고 놀란다. 홍길동 환자라면 대기 전광판엔 ‘홍길○’이라고만 표기된다.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다. 이 병원 병실엔 수도꼭지가 없다. 대신 센서가 달려 있어 손만 대면 자동으로 물이 나온다. 수도꼭지를 통해 질병이 감염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안전불감증’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해서 환경미화원들은 고무장갑을 쓰지 않는다.

박 병원장은 “이런 작은 배려가 ‘글로벌 스탠더드 병원’으로 도약하는 든든한 소프트웨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름만 대면 통하는 국내 일류 병원. 박 병원장은 “의료기술 수준은 미국과 견주어도 톱10 안에 들 수 있다. 가히 삼성전자급”이라고 자랑한다. 그는 이어 “일류 기업이 혁신 전도사를 자처하는 것처럼 일류 병원이 개척자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동북아 의료 허브가 가능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만간 인천 송도에 국제병원이 들어옵니다. 국내 의료기관도 대형화하면서 경쟁이 심해지고 있어요. 이제 그 경쟁을 즐겨야 하는 시대입니다. 경쟁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경쟁이) 처절하다고 말하면 이미 낙오한 겁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야지요. JCI 같은 국제인증 획득이 세브란스병원에 채찍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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