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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로서 조조·유비·손권을 말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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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28호 06면

삼국지 경영학
최우석 지음 ㅣ 을유문화사 ㅣ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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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나오는 세 군주, 즉 조조, 유비, 손권은 모두 영웅호걸로서 출중한 인물이다.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다는 말이 있지만, 조조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말에서 내려와서도 천하를 잘 다스렸다. 조조는 위대한 전략가이면서 정치가, 행정가이고 시인이었다. 조조의 위대함은 비상한 통찰력과 때를 놓치지 않는 행동력이다. 조조는 일찍부터 그 출중한 자질을 드러냈고, 어릴 때부터 임기응변과 지략이 풍부했다. 조조는 천하에 대의를 세우려면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비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말로 하면 전략적 사고로 시스템적 접근을 한 것이다. 식량 문제는 둔전제로, 국방문제는 병호제로, 국가 세입은 호조제(戶調制)라는 선진 시스템으로 해결했다. 인사도 시스템으로 처리해 나갔다. 이런 시스템은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 인구 증가, 경제력 증강, 국방 강화로 연결되었다. 국가이건 기업이건 사람이 가장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위나라가 삼국 중에 가장 강성한 원인은 조조의 성공적인 인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조는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잘 쓸 줄 알았다.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았기에 조조 밑엔 항상 인재가 들끓었다.

『삼국지』의 세 주인공 중 유비만큼 불가사의한 인물도 없다. 유비는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일어나 천하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유비는 늘 인의(仁義)를 강조했다. 지금도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인의군자(仁義君子)로 평가 받는다. 유비가 실천한 원칙이나 바른 길은 당장은 바보스럽고 답답해 보이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좋고 빠른 길이 되었다. 유비는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도리에 맞고 지혜롭다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유비야말로 타고난 최고경영자(CEO)라 할 수 있다. 유비의 일생을 보면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강하고, 강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특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유비는 적당히 고개를 숙일 줄도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았다. 그러나 천하거나 비굴하지 않았다. 지향하는 바와 원칙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큰 뜻과 정열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론 매우 부드럽고 온화했다. 그래서 유비는 솜에 싸인 강철이란 비유를 들었다. 유비의 리더십은 조조의 그것과 대비된다.

조조는 모든 것을 스스로 기획하고 주도했다. 하지만 유비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을 골라 믿고 맡기는 식이었다. 유비는 자기의 한계를 잘 알아 모든 것을 다하려 하지 않았지만 아랫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드는 데는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권한을 과감히 이양하면서도 핵심적 제어 축은 쥐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위대한 경영자의 능력이다.

『삼국지』의 세 주인공 중 오나라 손권만 창업주 오너가 아니다. 오나라는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이 창업을 했다. 장남인 손책이 기반을 넓힌 다음 그의 동생인 손권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나라의 틀을 갖추었다.
손권은 통 크고 신중한 성격으로 물려받은 인적 자원을 잘 관리했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많이 초빙하고 키웠다.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성격에다 생각이 유연했다. 실리를 위해서라면 체면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행동한 것이다. 특히 외교 감각이 탁월하여 당시 물고 물리는 삼국 관계에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했다. 형주를 차지한 조조가 80만 대군을 자랑하며 손권에게 항복을 권하는 최후통첩을 했을 때 손권은 마지막 회의를 소집하고, 오나라가 거국일치(擧國一致)하여 조조와 한판 결전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손권이 다양한 의견을 들어 결론을 도출해 가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여러 변수를 감안해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최종 국책으로 공표하는 타이밍과 형식은 정말 절묘하다. 그리고 마침내 적벽대전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손권은 권위와 위신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손권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도 매우 유연했다. 젊은 손권은 카리스마가 부족했지만 물려받은 신하들을 잘 구슬리며 자신의 뜻을 관철해 나가는 데 거의 천재적 자질을 보였다. 그러나 위나라의 공격을 물리치고 황제에 등극한 손권은 차츰 아랫사람들의 쓴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고 그의 총명은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오랜 신하들을 의심하고 비위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물을 먹였다. 결국 손권의 말년은 오욕으로 끝나게 되고 오나라도 명을 재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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