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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서 인간을 읽고, 죽음에서 삶 찾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호 14면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과학,의학 추천도서

최재천 지음l궁리l378쪽

유전자에 각인된 인간의 본성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본성이 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기에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다보면 인간의 본성을 찾는 데 많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물행동학자들이 동물을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지요.
우리는 인간이나 동물의 많은 행동을 보며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단정짓곤 합니다. 본능이란 타고난 것으로, 특별히 사고하고 판단해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지요. 동물학자 틴버겐은 다음과 같은 관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미 거위가 알을 품고 있는데 알 하나가 둥지 바깥으로 굴러 나갑니다. 이것을 본 어미 거위는 알을 둥지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틴버겐은 짓궂은 실험을 했습니다. 둥지 앞에 알을 하나 갖다 놓고 아교로 실을 붙인 다음 어미 더위가 둥지 밖으로 나와 알을 부리로 밀어 넣기 시작하자 실을 당겨 알을 빼냈습니다. 알이 없어졌는데도 어미 거위는 알을 미는 행동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행동은 유전자 수준에서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일단 자극을 받으면 끝까지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도 이와 같은 행동을 합니다. 하품을 할 때 옆에 있던 친구가 입에 손가락을 넣으면 그 손가락을 깨물어주고 싶은 데 하품이 끝날 때까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손가락을 깨물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우리 유전자 속에 이미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 이와 같은 고정 행동패턴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컷 민벌레처럼 며칠 동안 교미에 실패하는 경험을 겪고 나서야 교미에 능숙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식과 같은 중요한 행동은 유전자에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기본적으로 할 줄은 알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더욱 숙련되는 것이지요. 하품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지극히 고정적인 양상을 보이는 행동도 있지만 더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다듬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행동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 수준에서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하지만 경험과 학습을 통해 다양한 수준으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인간이 자연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유일하게 보호받아야 할 특별한 존재이며 인간만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다윈은 인간도 자연의 긴 고리 중 어느 한 부분에 속해 있으며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침팬지는 지문도 가지고 있고 우리와 유전자의 99%를 공유합니다. 인간은 분명 동물과 다르지만 그동안 생각해온 것처럼 그렇게 많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자연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알고 배우다 보면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하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류시화 옮김l이레l266쪽

사랑 있는 곳에 두려움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과 싸우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그들은 삶의 종착점인 동시에 새로운 인생의 문 앞에 서게 됩니다. 불행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면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서 남은 생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이 배움이 모두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준다는 것을 누구나 깨닫습니다.

수십 년 동안 죽음을 앞둔 이들과 아직 살아있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우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배움들이 결국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나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큰 상실감에 빠졌을 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간직하고,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삶에서 유일하게 진실하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반대말이고, 관계의 본질이며 행복의 근원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궁극적인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과 마주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깨닫습니다. 죽음이 자신을 파괴하지도 못하며,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리란 것을.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두려움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우리에게 두려움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이것이 죽음을 앞둔 사람이 얻는 배움입니다. 두려움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다른 감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의 감정입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은 오직 두 가지뿐입니다. 사랑과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모든 긍정적인 감정은 사랑으로부터,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근원적인 감정이 자리잡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 또는 두려움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곳에 사랑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이 차지할 자리는 없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 과목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상실 없이 삶은 변화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상실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보여주며, 사랑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르쳐 줍니다. 영혼이 성장할수록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조차도 점점 작아집니다.
눈을 뜨는 매일 아침, 당신은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하루를 선물 받은 것입니다. 당신은 이 생에서처럼,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 아이들,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는 이번 생처럼 경이로움을 지닌 대지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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