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24시>8.카자흐人 韓人3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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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崔 세르게이씨(33)와 崔 이리나씨(31)는 안양시에 있는 섬유제조.가공업체인 (株)대영모방에서 일하는 카자흐人이다.
두사람은 모두 구소련 지역에서「고려인」으로 불리는 한인 3세다.이들의 조부모들은 일제시대에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뒤 일본 패망후 귀국하지 못하고 소련국적으로 지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주인공들이다.할아버지.할머니가 타의에 의해 떠나 야했던 조국을이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다시 찾았다.
국적은 해체된 舊소련 15개 공화국의 하나인 카자흐지만 순수한 한국인의 혈통을 유지하고 있다.하지만 서양사람에 가까운 장대한 골격과 서툰 한국어는 모진 시련으로 가득찬 가족사의 한 모습으로 남아 거친 세월의 굴곡을 전해주고 있다.
경주崔씨인 세르게이는 70년 부모를 따라 사할린에서 카자흐의수도 알마아타로 이주했다.92년11월1일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의 조국 한국땅을 밟았다.세살위이며 한인3세인 부인 車 베라씨(36)도 함께 입국해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 다.고등학교를나와 중장비운전사로 일하던 그는 한달에 50달러 정도를 받았다.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4백달러의 기본급에 잔업수당을 합쳐 모두 6백~7백달러씩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평소에는 8시간 3교대로 일이 돌아가지만 일감이 넘칠때는 12시간 2교대로 일이 주어진다.새로 시작한 일에 익숙해지고 체력에도 자신이 있는 그는 항상 일을 더하게 해달라고졸라 정반대의 요구만을 받아오던 회사측을 놀라게 했다.
『카자흐에서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많지 않아 젊은 나이에 대부분의 시간을 빈둥거리면서 지낼때가 많았어요.물론 여기서는 돈도 많이 받지만 실컷 일할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이리나는 원주崔씨다.85년 결혼한 한국계 러시아인과의 사이에 9세된 아들이 있다.대학1학년을 중퇴한 그녀는 한때 상점점원으로 일하면서 엔지니어인 남편과 맞벌이를 한 적도 있다.세르게이와 같은날 입국했던 그녀는 1년만인 지난해 10 월17일 카자흐에돌아갔다가 올해 4월7일 일자리를 찾아 다시 한국으로 왔다.
남자 못지않은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녀는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기숙사에서도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신기하리만치 마음이잘 통해 지내는데 아무 불편이 없어요.』 그녀의 유일한 고통은하나뿐인 아들을 볼수 없다는 것이다.낙천적인 성격의 두사람은 입국초기에는 노래방과 나이트클럽에도 가보고 수십만원하는 바바리코트도 큰 마음 먹고 사기도 했다.좋아하는 술도 자주 마셨다.
그러나 이제는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소비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월급이 거액이지만 한국의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싸 기분대로 돈을 썼다가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단다.
『우리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 고민인데 이 회사에 와보니 일할사람이 없어 항상 쉬는 기계가 있더군요.이정도 일을 가지고 힘들다고 기피한다면 뭔가 잘못된것 같아요.』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에 대한 체류규정때문에 2년이상을 머물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두사람에게 편한 일만 찾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남아 있다.
〈李夏慶기자〉 다음회는 밤업소에서 일하는헝가리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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