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행락과 사회적 긴장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6월 첫 연휴의 날씨는 너무 좋았다. 감각이 무딘 사람까지도 바깥의 푸른 하늘,밝은 햇살을 보고는 산과 들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만 했다. 고속도로마다 차가 막히고,제주도·설악산이 인파로 뒤덮였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 좋은 계절에 모처럼 연휴를 맞아 스트레스도 풀고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갖는 것은 개인적으로 행복이요,사회적으로도 생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이 화창한 연휴의 아침신문과 TV뉴스는 긴장되고 울적한 소식만 연방내보내고 있었다. 다름아닌 북핵문제다 마침내 대북제재가 시간문제처럼 되고,북한은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공언했다. 북한방송은 전쟁에도,대화에도 다 준비가 돼있다고 호언했다.
구 소련권을 방문중인 김영삼대통령은 우리의 무력은 충분하다,국민은 안심해도 좋다고 말하고 외무장관을 유엔에 급파했다.
화창한 6월의 첫 연휴에 벌어지고 있는 이 지극히 대조적인 두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북핵문제가 긴박하고 심지어 전쟁냄새까지 풍기는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하기야 일반국민들로서는 그렇다고 여기에 대응해 따로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감도 있지만 마침 연휴를 맞았으니 나들이를 하는 것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연휴의 나들이는 그 나름의 생산적인 의미도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이번 연휴는 북핵과 현충일로 하여 다른 연휴와는 다른 좀 특별한 분위기와 의미가 있는데 많은 우리 국민들이 그런 분위기와 의미를 잊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갖게 된다. 북핵긴장감이 국민 개개인을 속박하고 불안케 해서는 오히려 안될 일이다. 하지만 북핵이 어떻게 되든 무관심하고 연휴가 되면 놀고 보자는 것이 전반적 사회분위기라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술집도 문을 닫는 현충일이면 각별히 호국선열이나 영령을 생각하진 않더라도 마음껏 흥청대거나 질탕하게 놀지는 않는 사회분위기가 돼야 옳을 것이다. 북핵이 있건 없건,현충일이든 아니든 모든 연휴의 행락모습이 똑같다면 우려할 일임에 틀림없다.
초근 외신은 자주 한반도 상황이 심각한데도 정작 서울과 한국은 태평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더러 해외세미나에 다녀온 학자나 공직자들은 워싱턴이나 동경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 지식인이나 요인들보다 더 북핵문제를 걱정하더라는 말을 전한다.
북핵문제가 심각하지만 여기에 기가 죽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체 국민의 결집된 힘으로 유효한 대응을 가능케 하자면 상황이 요구하는 일정한 사회적 긴장감은 필요할 것이다. 연휴의 행락모습을 보면서 성숙된 시민의식이란 뭘까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