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진짜 교수님, 당신은 떳떳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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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 전 총장의 출마포기를 둘러싼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일류 경제학자인 그는 총장 재직 시에도 여러 편의 논문을 썼고, 학부 강의까지 진행할 정도로 성실했다. 누군가 한바탕 웃자고 지어낸 짓궂은 픽션일 뿐이다. 논문 표절 시비로 사회 전체가 홍역을 치른 직후여서 그런 세태풍자적 유머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픽션을 지어낸 사람의 의도대로 한바탕 웃었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학문세계의 권위와 존엄의 상징인 서울대 총장까지도 극단적인 희화화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지금 적지 않은 대학 교수들이 신정아씨를 원망하고 있다고 한다. 표절한 논문으로 가짜학위를 받아 교수가 됐을 뿐만 아니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관계까지 드러나자 “가짜 한 사람이 교수집단 전체를 망신시켰다”고 성토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박사학위로 교수가 된 신씨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열을 받고 있는 교수님들은 모두가 과연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선뜻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다.

밝혀진 대로 신씨는 박사학위가 없다. 하지만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교수로 열심히 살았다. 그녀는 “내가 얼마나 죽도록 일했나.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10년을 20년처럼 일했는데”라고 했다. 그녀를 아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이 말에 동의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업무와 연관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진짜 교수’라고 해도 모두가 신씨보다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학위가 있는 ‘진짜 교수님’이라고 해서 누구나 신씨를 욕할 자격이 있을까. 일단 전임교수가 된 이후에도 젊은 시절의 뜨거운 연구열정을 유지하는 교수가 얼마나 되는가를 스스로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비록 일부일망정 남의 논문을 짜깁기하거나 통째로 베끼는 논문표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는 조교들로부터 ‘논문 상납’을 받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도 표절을 많이 하다 보니 “이제는 무엇이 표절인지조차 헷갈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학에서 정직하게 글쓰기 (Doing Honest Work in College)』의 저자로 표절방지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시카고대학의 정치학자 찰스 립슨 교수를 모셔와야 할 판이다.

안식년을 맞아 1년씩 외국의 대학에서 지내는 일부 교수들의 행태도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 학교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는 얼굴을 보기 어렵지만 골프장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교수가 너무 많다. 이런 사람일수록 입만 열면 정치가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하면서 공연히 비분강개한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 학생들의 등록금을 낭비하는 지식인의 위선을 보여줄 뿐이다. 이들은 자신을 교환교수라고 포장한다. 마치 석학 대접을 받으면서 강의와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라는 이미지를 갖는 ‘교환교수’라는 용어는 이들의 실상과는 무관한 허위의식의 장치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특권적인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온갖 권위와 존엄의 화신으로 군림하면서 실은 최소한의 성실성과 정직성도 갖추지 못한 이들을 퇴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그것이 보잘것없는 보상에도 감사해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과 제대로 된 교수들을 배려하는 방법이다.

신정아씨의 거짓말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잘못이 드러난 사람만 비난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면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이제 교수사회도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스스로의 치부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그래도 ‘진짜 교수님’이 ‘가짜 교수’보다는 한 수 위라는 말은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하경 문화스포츠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