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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의영웅>5.작가 이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소설『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그는 단 2편의 소설로 일약 문단의 질시와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그는 등단부터 아주 시끄러웠다.92년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수상작인 자전적 소설『내가 누구인지 말할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문단에 첫 발을 디딘 그를 마중나온 것은 표절시비였다.기존의 여러작품에서 따온 「혼성모방」이 과연 포스 트모던한 새 창작기법인가,아니면 표절인가에 대한 거센 논쟁이 그의 첫 소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다.이 때문에 그는 소설을 쓸 때보다 쓰고 난 뒤 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그러나 아직 이정도는 약과였다. 이듬해 7월 발표된 그의 대표작『영원한 제국』은 그에게잠시의 쉴틈도 허락하지 않았다.한달만에 당당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것부터 시작해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과 코넌 도일.존 딕슨.카르베르트 반 홀릭등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에서 각종 모티브를 응용했다는 소설의 방법론이 다시 표절시비를 불렀고 문단 내부의 문학논쟁을 가열시켰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나왔고,지나치게 南人중심의 역사로 老論을 악인화했다는 비평도 이어졌다.소설가 이전에 평론가로 문단에 첫 얼굴을 내밀었던 그지만 28세의 나이로 거듭되는 기성문단의 정통문학론에 홀로 버텨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없는 소모전이 계속되는 와중에 그는 천군만마의 지원을 얻는다.소설가 李文烈씨가 그의『영원한 제국』을 읽고 감탄한나머지「여름밤을 꼬박 새운 즐거운 충격」이라며「後生可畏」란 말로 당찬 후배작가의 글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李文烈씨는 이씨의 패러디 기법이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작자의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라고 평론가들의 표절시비를 일축한다.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노론과 남인의 쟁론을 세계관의 충돌로해석한 탁월한 역사인식과 독자의 교양욕구를 충 분히 만족시키면서 강렬한 흡인력을 가지는 구조에 있다는 해석도 이어졌다.선배작가 李文烈씨의 애정어린 분석은 당시 문단의「미운 오리새끼」가되었던 이씨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씨는 자신의 문학방법론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여러 작품에서 골간을 따와 새로운 작품을 구성하는「혼성모방」은분명 창작의 한 기법이며 신세대의 정보욕구와도 맞아떨어진다는게그의 주장이다.
쏟아지는 정보화시대를 사는 신세대들은 보다 간결하고 종합적인정보를 원한다.하나의 정보.교양을 얻기 위해 책 한권을 다 봐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는 셈이라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정보화사회를 살아가는 유력한 방법은 필요에 따라 정보를 분류하고 묶어내는 것인데 소설이라고 예외일수 없다는 것이다.이씨의 경우 이들의 사고와 주장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혼성모방」의 방법론을 제시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그러나 이씨 자신이 신세대에 속하며,이들의 문화와 의식에 대한 커다란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책 한권을 읽더라도 보다 다양한 정보.지식.교양을 한꺼번에 얻어내야하는 신세대 감각과 이씨의 창작론은 여기서 합일점을 찾게 된다.
이씨의 소설이 히트한 숨겨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뛰어난 추리적 구조나 현학적 수사로 교양욕구를 충족시켰다는 작품 내적인 요소외에 신세대의 감각과 정보욕구를 정확히 반영한 소설이라는 작품 외적인 요소가 그것이다.이씨가 이른바 「신세 대 문학론」의 기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인화씨는 현재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하나의 커다란「음모」를 꾸미고 있다.그것은 우리의 문학을 얘기해줄수 있는 간판 평론가를 키우는 일이다.이씨는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권위있는 평론가가 없는 것으로 믿고 있다 .내달 1일박사과정 연구원 4명과 함께 구의역 부근에 사무실을 얻고 中國등에 우리의 평론을 수출하기로 했다.문학의 메신저로서 스타 비평가를 키워내겠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지금까지 72만부가 팔린소설 고료 2억여원을 투자하기로 했 다.
『우리문학은 수준으로 보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통합니다.홍보를 제대로 못하는게 흠이지요.유명작가 작품 몇개를 번역했다고세계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우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관심을 끌어내는게 중요합니다.세계에 통하는 스타 평론가 는 그래서 꼭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문단의 소극적 자세를 벗어던지고 거침없이 자기 것을 드러내자는 신세대 작가의 당당한 자신감이다.
〈李正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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