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의 남자읽기] 외모 신경쓰면 '제비' 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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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정말 외모를 그토록 중요시할까. 그렇다면 나도 남들처럼 젊고 날렵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괜찮은 직장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통하는 J씨(48)는 최근 이런 고민에 빠져 있다.

올해로 직장생활 20년째인 그도 1~2년 전부터는 주름살이 눈에 띄게 늘고 흰머리도 많아졌다. 언제부터인가 직장이나 모임에 가면 "염색 안 하느냐, 구식이다"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처음엔 무심코 지냈지만 반복해 듣다 보니 J씨도 차츰 흰머리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새해엔 자신에게 무신경(?)하던 아내마저 "회사에 오래 남아 있으려면 남자도 잘 꾸며야 한다"며 염색도 하고 멋도 좀 부리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사람은 겉모양보다 내면이 중요하며 외모에 신경 쓰는 남자는 왠지 진실함이 없어 보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솔직히 머리에 무스 바르고 향수까지 뿌리는 젊은 후배들을 보면 '제비'란 단어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래서 그는 누가 뭐라든 인위적인 멋내기 대열에 선뜻 끼어들기가 주저된다. 하지만 J씨도 남들에게 멋진 남성으로 보이고 싶은 바람은 있다. 어떻게 해야 현명한 처신을 하는 걸까.

우선 J씨는 '외모에 신경 쓰는 남자=제비족', '수더분한 남성=진실한 사람'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생각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 이 세상에는 화장품을 듬뿍 바르고 다니는 성실한 인재도 있으며 수더분한 얼굴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남자도 많지 않은가. 또한 외향적인 서구문화가 급속히 도입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젊음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현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남성의 젊음은 무의식적으로 '정력'과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물론 젊고 잘 생겨야 멋진 남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인위적으로 외모를 가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중년 남성인 J씨가 멋있게 보이려면 깨끗하고 좋은 인상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부터 40세부터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사실 다같이 주름진 얼굴이라도 찌든 인상으로 만들어진 주름과 하회탈처럼 기분 좋은 웃음으로 만들어진 주름살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만일 당신이 매력적인 중년 남성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면 먼저 매일 아침 거울을 쳐다보면서 생기 있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는 연습부터 해보자. 연예인처럼 매스컴을 타는 사람에게만 밝은 웃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억지로라도 웃음짓다 보면 자율신경이 이완돼 긴장을 완화시키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아내가 원한다면 머리 염색도 한번쯤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 젊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기대하는 아내의 청이라고 생각해 보자. 혹시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활기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염색한 모습이 부자연스럽고 싫을 땐 다음부터 안하면 된다. 중.노년기 남성도 자신이 원할 땐, 청년들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저녁 퇴근 길엔 향 좋은 로션을 사서 바른 뒤 아내의 반응을 살펴보자.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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