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대폭 인사/내각불협화 제동… 「일하는 바람」 넣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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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복지부동은 부처이기주의 탓” 판단/농림차관 해외발탁에 당정 “의외다”
23일 단행한 7개 부처에 대한 차관급 인사는 정부부처내 「팀웍플레이」를 강화하기 위한 의지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차관인사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핵·농안법 파동·우루과이라운드를 보완하기 위한 농어촌대책·공업배치법 문제를 놓고 부처이기주의,장·차관간의 의견불일치가 심화돼 정책혼선을 가중시켜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인사는 바로 그같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이 때문에 상공자원차관·농림수산차관·정무1장관 보좌관 교체 등 소폭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던 차관인사의 폭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정부내의 불협화음을 더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김영삼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담기 위해 폭이 커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복지부동은 정책조정능력의 부재,부처간 이해다툼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에서 일하는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우선 북한 핵문제·벌목공의 국내 수용문제와 관련해 한승주 외무장관과 호흡이 잘 맞지 않은 홍순영차관을 경질한 것은 장관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데 대한 질책으로 보인다.
한 장관 역시 교수출신으로 아마추어적 외교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김 대통령은 「한 장관이 영어를 잘하고 미국을 잘안다」는 인식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고 민자당 한 당직자는 분석했다.
미주국장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는 박건우씨(월드컵유치위 사무총장)를 외무차관에 기용한 것은 대미외교의 강화라는 포석도 있지만 반대로 미국쪽에 너무 치우친다는 지적을 받을 우려가 있다.
주목되는 것은 이석채 기획원 예산실장을 농림수산차관에 기용한 것으로 정부와 민자당은 「의외의 인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농안법 파동으로 차관·제2차관보·실무국장·과장·사무관까지 줄줄이 경질돼 사기진작 측면에서 내부승진의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다. 정부관계자는 『국제농업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농림수산부의 부처이기주의를 차단하겠다는 통치권자의 단호한 뜻이 배어있다』고 설명했다.
재무차관에 김용진 관세청장을 기용한 것은 지난해 실명제의 비밀실무작업을 지휘하면서 보인 능력이 평가된 것.
정무1장관 보좌관에 임명된 조경근변호사는 천주교 정평위에서 활동하고 매스컴 토론에도 자주 등장했으며 「사람을 키운다는 의미가 있다」고 민자당에서는 보고 있다.
○…7명의 차관급 이사중 5명이 경제부처 차관급이라는 사실은 이번 인사의 직접적인 계기가 농안법 파동에서 비롯된 농림수산부의 차관 경질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인사의 결과를 보면 비록 어느 한 부처의 문책에서 비롯된 연쇄 인사이기는 하나,이번 기회에 「일하는 새바람」을 불어넣어보자는 각 부처 장관들의 뜻이 상당히 반영된 인사임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이미 지난 3월께부터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3∼4명선의 차관급 인사가 검토되고 있다는 말이 꾸준히 흘러나왔던 터다. 그러나 인사의 특별한 계기를 찾지 못해 계속 미뤄지던 인사가 농안법 파동을 계기로 당초 예상보다 더 커져서 나타난 것이다.
상공자원부의 차관급 인사는 「문책 반,새바람 반」격의 인사라고 볼 수 있다. 비록 해명은 됐지만 물러난 이동훈차관 주변의 잡음이 예상보다 큰 내부인사 순환을 불러왔다.
여기에 문책성이 전혀 가미되지 않았는데도 재무부가 일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농림수산부보다 오히려 더 큰폭의 인사를 함께 단행했다.
결국 재무부와 상공자원부는 꼭꼭 막혀있던 인사적제의 활로를 모처럼 여는 장을 하나 만들어냈고 이 점에 있어서는 이석채 예산실장을 농림수산부 차관으로 승진시킨 경제기획원도 마찬가지다.
재무부의 경우는 산하기관에까지 이번 인사의 파장이 계속 이어지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그 대상에는 일부 감독기관과 현재 행장자리가 비어있는 외환은행도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매우 우세하다.<박보균·손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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