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위신 걸린 국정조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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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질질 끌기만 해오던 상무대문제 국정조사가 21일 국회 본회의의 조사계획서 승인으로 늦게나마 공식으로 시작하게 됐다.
국정조사를 통해 의혹의 대상이 돼온 상무대공사 대금의 정치자금유입 여부가 명쾌하게 밝혀져야 하겠지만 아직도 조사가 제대로 될지,제대로 의혹이 풀릴지에 대한 확신은 없는 상태다. 당장 문제의 자금이동을 파악하기 위해선 수표추적이 필수적인데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 긴급재정 경제명령으로 인해 국회가 추적할 길이 있는지부터가 문제다.
국정조사에 관한 법은 누구라도 조사에 응하거나 협조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 긴급명령엔 현행의 다른 법에 우선한다는 규정이 있고,또 신법이 구법에 우선한다는 법리로 인해 수표추적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해당은행이나 은행감독원도 이런 법리를 내세워 국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어려움말고도 증인·참고인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제대로 국회에 출석할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핵심증인인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은 현재 행방이 알려져 있지 않고,일부 승려들도 속명·주소 등이 불명해 출석요구서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정조사의 이런 한심한 출발을 개탄하면서 결국 의혹은 의혹대로 풀지 못하면서 국회와 여야 정당들의 위신손상과 불신만 가중시키지나 않을까 미리부터 걱정스럽다. 그러나 이런 여러 악조건속에서도 여야가 정말 조사할 의지만 확실하다면 진상을 규명할 방도가 전혀 없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과 국방부가 파악한 자료를 숨김없이 국회에서 밝히고,채택된 증인·참고인들에 대한 면밀한 신문을 통해 어느 정도의 자료만 확보한다면 국회로서는 진상의 윤곽에 접근할 단서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의 조사활동을 통해 확실한 자료만 갖는다면 검찰에 의뢰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수표추적을 하는 방법도 있다고 본다. 상무대 문제에 관한 한 검찰수사는 미진했고,특히 야당측은 검찰수사를 믿고 있지 않지만 국정조사를 통해 뭔가 새로운 자료나 단서가 나올 경우에도 검찰이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번 국정조사는 깊이 빠질대로 빠졌지만 그나마 바람직한 열매를 거두느냐의 여부는 정부·여당에 크게 달렸다고 본다. 수사 관련자료와 정보 등을 정부측은 충실히 내야 할 것이고,증인·참고인의 소재파악 및 출석요구서 전달 등의 실무절차도 정부·여당이 마음먹기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다.
국정조사가 공식적으로 착수된 이제와서까지 「우리편」에 불리하니 적당히 넘기자는 자세로 나간다면 작은 이득을 위해 신뢰와 이미지라는 더 큰 것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잊지말기 바란다. 아무쪼록 여야 모두 이번 국정조사는 국회 체면이 걸려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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