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당] 서로 먼저 "미안하다" 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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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얼마 전 거리를 걷다가 어떤 아저씨와 몸이 부딪친 적이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걷고 있었고 그 아저씨가 옆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나치려다가 생긴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사과해야 할 아저씨는 아무 소리 없이 가버리고 나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고 말았다.

새삼 지난해 여름 두달 동안 영국 케임브리지로 연수 가서 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영국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몸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물론 그와 비슷한 상황만 발생해도 입에서 "Sorry(소리.미안합니다)"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동시에 자신도 남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싶지 않다는 의식의 표현이라는 걸 머지않아 알게 됐다. 이후 나도 "Sorry"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영국에서 몸에 밴 습성대로 몸이 약간만 스쳐도 내 입에서는 "죄송합니다"라는 얘기가 튀어나온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거나 무시하는 반응을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경민.서울 양천구 목6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