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메이커'로 부활한 고이즈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 후보인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14일 아베 신조 총리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 자민당사 사무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격 사퇴를 발표한 12일 오후부터 13일 오전까지만 해도 차기 총리 1순위는 아소 다로(生太郞) 자민당 간사장이었다. 그러나 13일 낮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자민당 내 대부분의 파벌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71) 전 관방장관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미 대세는 '후쿠다 총리'로 굳어진 듯하다. 그가 총리가 되면 첫 부자(父子)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급반전의 이유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아소에게 속았다="내가 아소에게 속았다. 당정 개편 후 인사권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12일 밤 아베 총리가 측근에게 털어놓은 이런 속마음이 전해지면서 아베가 속한 마치무라(町村) 파벌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아소 간사장은 지난달 말 당정 개편 이후 구심력을 잃은 아베 총리를 따돌리고 인사 전권을 휘둘렀다.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전 관방장관을 자민당 정조회장 대리로 앉히려 했던 아베 총리의 부탁도 무시됐다고 한다. 당초 마치무라파는 "총리를 네 번 연속 우리 파벌에서 내는 건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소의 자만이 드러난 뒤 마치무라파는 "아소를 그냥 놔둘 수 없다"며 같은 파 소속인 후쿠다를 옹립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아소는 12일 "실은 나는 10일부터 (아베의 퇴진 의사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의 전격 사임에 분노하던 의원들의 화살은 다음날부터 아소를 향하기 시작했다. "미리 알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니 연대책임을 져라"는 것이었다. 일각에선 "자기가 총리가 되려고 일부러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게 아니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킹 메이커' 고이즈미=돌다리도 두드려 건너가는 성격의 후쿠다는 마지막까지 주저했다. 결정타는 13일 오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65) 전 총리와의 통화였다. 고이즈미는 후쿠다의 선친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의 비서 출신이다. 72명에 달하는 무파벌 세력의 지지를 얻고 있던 고이즈미의 의향을 정확히 몰라 후쿠다는 주저했던 것이다. 그런 고이즈미가 흔쾌히 지지를 약속했다. 자신의 정치 스승에 대한 은혜를 결정적 순간에 갚은 셈이다. 고이즈미는 아소가 "(고이즈미가) 부숴 놓은 자민당을 내가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한 데 분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후쿠다 야스오=와세다대 졸업 후 17년간 정유회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총리였던 부친의 비서관을 거쳐 1990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2000년 말부터 2004년까지 최장수 관방장관으로 재임했다. 영어에도 능통하다. 실언이 없는 반면 무뚝뚝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미.일 동맹 못지않게 한국.중국 등 아시아 외교도 중시한다. 대북 문제도 아베에 비해 훨씬 유연하다. 따라서 그가 총리가 되면 대북 관계에 큰 변화가 올 전망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도 반대하며 대체시설 건립을 주장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