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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체계 잘못 연 수천명 희생(특진/중병앓는 의료현장: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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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카폰도 없이 달리는 앰뷸런스/미,경찰­병원연결 5분내 현장에
『끼익… 꽈당 꽝.』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르망승용차가 순식간에 휴지처럼 구겨졌다. 사고 운전자 양진수씨(47·가명·사업)의 얼굴은 피와 유리조각으로 뒤범벅. 가슴에는 앞 유리를 깨고 들어온 가드레일 쇳조각이 박혔다.
『사고다. 빨리 앰뷸런스 연락해.』 지나던 운전자들이 달려들어 구조작업. 가슴에서 쇳조각을 빼닌뒤 차밖으로 끌어낸다.
『숨이,숨이 차요.』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양씨.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막혔던 피가 솟구쳐 나온다. 어찌할바 몰라 쩔쩔매는 운전자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도착한 것은 10여분뒤였다.
사고발생 1시간만인 오후 6시30분부터 연세대의대 원주기독병원 응급실에서 인공호흡과 수혈. 그러나 점차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도착 1시간30분만에 얼굴에 흰 천이 덮였다. 차트에 적힌 사인은 흉부 과다출혈. 지난달 3일 오후 5시30분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영동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의 전말이다.
『현장에서 지혈과 인공호흡 등 최소한의 응급처치라도 했더라면….』
응급실장 임경수씨의 안타까운 탄식이다.
연세대 원주의대 응급의학과 임경수·황성오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응급실에서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한 외상환자 60명중 40%인 24명이 현장에서 응급처치만 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중상자 2백48명중 87%(2백15명)가 앰뷸런스가 아닌 일반차량으로 실려왔다. 그나마 앰뷸런스도 동승자가 있었던 경우는 6.5%(16명)에 불과했다. 이같은 비율로 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1만2천여명중 5천명 가까이가 응급의료체계만 제대로 됐더라면 살 수 있었다는 결론이다.
허술한 응급의료체계로 억울한 생명이 엄청나게 희생되는 셈이다. 우선 응급의료의 기본인 응급정보 통신체계가 엉망이다.
앰뷸런스와 의료기관간 카폰·무선기 같은 교신장비가 없다. 촉각을 다투지만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뒤에야 의료진은 준비를 시작한다.
응급환자의 응급실을 중계해주는 129응급정보센터도 주파수(16개 사용) 및 중계소(전국에 34개) 부족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적어도 주파수·중계소를 각각 현재보다 2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129와 경찰·소방서도 다른 무선체계를 쓰고 있어 현장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동시 출동이 불가능하다.
또 응급인력·장비가 너무 부실하다.
미국의 패러메딕(paramedic),일본의 구급구명사 등과 같은 응급구조 인력이 양성되지 않아 사고현장엔 물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기초 응급구조조차 못한다. 지난해 66명의 사망자를 낸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 때는 구조대가 응급장비나 전문지식 부족으로 뼈가 부러진 환자를 헬기에서 로프로 그냥 끌어올려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당시 헬기로 구조됐던 김성희씨(30·주부)는 하반신 마비로 지금도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동에서 치료중이다.
우리나라의 앰뷸런스는 총 2천9백여대(의료기관 2천3백여대,119구급대 4백여대,응급구조단 2백여대). 그러나 대부분이 규정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60년대말,일본은 70년대초에 구조 및 후송시스템을 재정비했다. 미국은 소방본부인 911센터를 중심으로 경찰과 병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신고와 동시에 경찰차·응급구조차·구조대·앰뷸런스 등이 같이 출동한다. 5분내 현장도착이 목표다. 국내의 경우 90년 국민소득이 5천달러를 넘어섰고 교통사고 부상자도 88년 22만5천62명으로 20만명선을 넘어선 이래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우리도 응급의료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119구급대·129응급정보센터의 무선통신망 연결 등 전화체계 통합과 기능 일원화를 제안하고 단기적으로는 ▲응급구조사 등 응급전문인력 양성 ▲앰뷸런스 등 응급장비 확보를 주장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응급의료법이 국회를 통과,응급구조사제 도입이 확정돼 현재 시행령이 제정중이다.
그러나 응급의학학회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응급체계가 제대로 구축될 수 없다고 말한다. 앰뷸런스 한대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1년 운영비가 1억5천만원 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긴급 앰뷸런스를 국고로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앰뷸런스 운영은 민간단체가 운영비를 국고에서 지원받고 있다. 일본은 88년 인구 50만명당 한곳씩 통합응급정보센터를 구축하면서 한곳당 통신장비 구입비로 22억원을 썼다.<이규연·이후남기자>
◎국내 응급구조체계
우리나라의 응급구조체계는 내무부의 119구급·구조대,보사부의 129응급정보센터,민간단체인 한국응급구조단 등으로 나누어진다. 119구급·구조대는 70년부터 소방공무원들이 봉사행정차원에서 무료 운영,현재 전국소방서 및 군지역별로 3백65대 설치.
4백여대의 앰뷸런스와 기초 응급의료 및 구조교육을 받은 소방관 1천6백여명이 24시간 출동대기,129응급정보센터는 91년 응급의료관리운영 규칙에 의해 설립돼 전국에 12곳.
신고를 받으면 병원·소방서·응급구조단에 연결해준다. 한국응급구조단은 81년 민간자원봉사들이 봉사차원에서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전국 85개 지부에 5백여명이 앰뷸런스 2백여대를 운영. 경비는 시·군 등 같은 구역내는 5천원,장거리는 ㎞당 2백원.
◎휠체어 탄 아시아나기 추락때 헬기여인/최소한 널빤지라도 사용했다면­.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당시 로프에 매달려 헬기로 구조됐던 김성희씨(30·주부)의 구조광경을 본 응급전문가들은 당시 발을 굴렀었다.
­지금 상태는.
▲하체를 못써 휠체어 신세다. 다리감각을 찾기 위해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당시 상황은.
▲정신을 잃어 몰랐으나 깨어난뒤 구조방법이 잘못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소한 널빤지라도 사용했더라면….
­구조대를 원망하나.
▲오히려 감사하고 싶다. 다만 응급환자 후송방법이 개선돼 나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도움말 주신분
▲임경수·황성오 연세대 원주의대 응급의학과 교수
▲박창일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재활의학과 교수
▲백광제 고려안암병원 응급진료센터 실장
▲탁문곤 용산소방서 장비계장
▲이광선 강서소방서 119구조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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