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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한민족 유전자 뜯어보니…"남방계도 조상이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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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집단유전학이란 학문분야가 있다. 10여년 전부터 붐을 일으켜온 분자유전학이 유전물질인 DNA에 기반을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분야라면 집단유전학은 이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특정 지역이나 관계에 있는 집단에서 특이한 유전자가 나타나는지 유무를 관찰하는 거시 영역이다.

한민족만을 놓고볼 때 집단유전학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한민족 집단유전학의 대표적인 해외 연구자로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조 터월리거(38) 박사가 꼽힌다. 터월리거 박사는 '한국인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에 살고있는 고려인, 중국 옌볜의 조선족, 스웨덴의 한국인 입양아,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 등이 관심의 대상이다. 같은 유전인자를 가진 상태에서 다른 환경에 따라 어떤 질병이 나타나는지 질병 유전자를 찾기 위함이다.

지난해 1월 한국을 찾은 터월리거 박사는 "한민족만큼 유전자가 순수하게 보존된 민족이 드물다"고 설명했다.과연 터월리거 박사의 말처럼 한민족은 순수한 단일민족일까.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꾸준하게 이 문제에 매달려왔다.

2001년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정주 교수팀이 서울과 제주에 사는 한국인 2백여명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특정부위를 비교한 결과 14.5%가 남태평양 토착민에게서 나타나는 유전형질을 지니고 있다는 논문을 국내 학술지에 발표했었다. 몽골에서만 유래한 민족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Y염색체가 부자지간에만 주고받는 유전형질인 반면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를 통해서만 고스란히 이어져 집단유전학의 좋은 연구 소재로 통한다.

미술과 해부학을 전공한 조용진 한서대 얼굴연구소장은 "얼굴 등의 특징을 통한 분석 결과에서도 한국인 가운데 20% 가량은 남방계의 특징을 강하게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남방계는 진한 눈썹과 쌍꺼풀, 두터운 입술 등이 특징인 반면 북방계는 눈이 작고 쌍꺼풀이 없으며 코가 길고 끝이 뾰족한 형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의대 한승호 교수는 수년 전 인간백혈구항원(HLA)을 비교분석한 결과 한국인이 오히려 태국의 고산족인 아카족 등과 더 맞아 떨어진다는 논문을 발표했었다. 한교수는 동북아시아 민족과 머리형태를 비교한 결과에서도 한국인은 귀에서 정수리까지의 머리 높이가 높은 반면 몽골인은 낮게 나타나는 등 몽골에서 분리된 단일민족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동북아민족 기능성 지놈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한림대 의대 김종일 교수가 맡고 있는 '한국인과 몽골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 비교 분석'이다.

오는 30일 서울대 의대에서 열릴 이 사업의 연구사업 성과 발표안은 한민족이 하나의 조상에서 나온 갈래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김교수팀은 미토콘드리아 DNA 전체 1만6천쌍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4천쌍의 염기서열 분석을 완전히 끝냈다. 분석 대상은 한국인 66명과 몽골 할하족 72명이었다.

한국인끼리 비교한 결과 차이를 보이는 평균 염기수가 7.3으로 나타났다. 이는 4천쌍의 염기서열 가운데 차이를 나타내는 염기가 7개 정도라는 의미다. DNA의 돌연변이 발생비율은 1백만개 가운데 하나로, 미토콘드리아 DNA의 경우 몇백년에 하나가 변할까 말까한 미미한 확률이다. 결국 7.3의 차이는 한민족이 '웅녀' 한명에서 갈라져나왔다는 단일민족론에 배치한다.

김교수는 "한민족이 한명의 조상이 아니라 이미 다양한 조합을 이룬 그룹에서 분리돼 나와 민족으로 굳어진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몽골인의 평균 차이가 8.2로 더욱 컸다는 점이다. 몽골인의 공동조상이 더욱 복잡한 조합에서 나왔다는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다. 이는 몽골의 해외 침략사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한국인과 몽골인을 합친 평균 차이는 7.8로 나타났다.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화학공장. 사람의 경우 모계로만 유전된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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