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의 승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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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분열과 의심을 끝내고 다양성이 존재하는 국가건설을 위해 모두 나서야 한다. 지난날의 상처를 걷어버리고 만인을 위한 정의가 숨쉬는 사회를 건설하자.』
인종차별의 철벽을 깨뜨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는 수락연설에서 이렇게 대화합을 강조했다.
3백50년 가까운 백인 지배사회를 일거에 다수 흑인 지배사회로 바꾼 남아공의 이번 선거는 남아공 국민의 승리,인간 양심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 승리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흑백 지도자들의 화해와 용서를 바탕으로한 대화합정신의 승리이기도 했다. 억압의 희생자들이었던 흑인들은 지난날을 묻어버리고 억압자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고,백인들은 독점적으로 누렸던 온갖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모두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된데는 2명의 탁월한 정치지도자의 공로가 크다. 새로운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와 물러가는 백인 대통령 데 클레르크다. 한때 인종차별정책 추종자였던 데 클레르크는 흑백의 공존을 위해 과감히 기득권을 버렸다. 그래서 그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석방했다.
27년간 감옥에서 혹독한 생활을 한 만델라는 석방되는 날부터 화해의 길을 걸었다. 그는 백인과 새로운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협상을 하면서 백인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제안들을 내놓았다. 우선 ANC를 탄압하고 그 자신을 박해했던 보안기관들에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흑인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신분은 물론 연금까지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적들을 고문하고 살해한 경찰·군인·비밀기관원들을 법정에 세우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한 범죄에 대한 책임은 인종차별 체제에 물어야지 어느 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한 화해의 정신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가능하게 한 잠정헌법의 협상과정에서도 잘 발휘됐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의 권력독점이 아니라 득표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고 내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백인과 다른 소수민족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따라서 백인중심의 집권 국민당은 기득권을 포기,성공적으로 역사적인 새 정부가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 따른 환희와 흥분이 지니고 나면 남아공 국민은 또 한차례 대화합의 정신을 살려야 할 어려운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는 대다수 흑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생활여건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흑백간의 생활격차에서 오는 위화감과 갈등으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는 그동안의 고통에 비하면 극복해내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화해와 대화합의 정신이 그러한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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