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의 한 수] 삼겹살이 왜 ‘국민 고기’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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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국인, 특히 서민들에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란 무엇일까? 아마 ‘고기’를 먹고 ‘소주’를 마시며 ‘노래방’에서 노는 것이 아닐까? 이른바 ‘국민 오락’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기란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중에서도 삼겹살을 뜻한다.

그런데 왜 한국인은 유독 삼겹살과 갈비를 좋아할까? 사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한국인만큼 쇠고기에서는 갈비, 돼지고기에서는 삼겹살을 선호하는 문화권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선호 정도가 아니라 지나친 집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흔한 질문을 갖고 서울 신림동에 있는 이위형(66) 미트비즈니스컨설팅센터 소장을 찾아갔다. 이 소장은 1965년 축산 관련 공무원으로 ‘고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사람이 먹는 고기는 거의 다 먹어 본” 국내의 손꼽히는 고기 전문가다.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삼겹살과 갈비를 좋아하는 나라가 있습니까? 왜 우리만 이런 독특한 성향을 가졌을까요?
“맛 때문이죠. 우리는 강한 맛을 좋아해요. 이 강한 맛은 지방이 낀 고기에서 느껴집니다. 맛을 내는 물질이 지방에 녹아있거든요. 외국인은 주로 훈제 같은 과정을 거쳐 지방을 버리고 먹는데 우리는 사실 생고기처럼 먹는 거죠. 이걸 직화(直火)라고 하는데 돼지고기든 쇠고기든 지글지글하게 해서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성향을 가진 나라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는 각종 수치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2005년과 2006년을 보면 우리가 연간 소비하는 삼겹살은 24만t 정도다. 이 중 수입산은 38% 정도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나눠보면 한 사람이 1년에 25인분(200g=1인분)의 삼겹살을 먹는다. 성인 기준으로 한 달에 세 번 정도 먹는다는 얘기다.

▶미트비즈니스컨설팅센터 소장. 1941년생. 경북대 수의과대학 졸업. 1965년 축산 관련 공무원으로 ‘고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후 각종 고기 가공 관련 사업과 농축산물공급센터(KRSC)를 운영하면서 고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경험했고, 2000년부터는 육류 교육 및 컨설팅에 전념하고 있는 국내 손꼽히는 고기 전문가다. 정부의 쇠고기 검역 전문위원이고, 현재 대림수산 사외이사로 있다.

이 삼겹살을 포함해 한 사람이 소비하는 돼지고기는 1년에 18kg 정도. 이 중에서 삼겹살은 5kg(28%)이다. 수치를 제시하던 이 소장이 의미를 부여했다. “이 정도면 국민 고기입니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는 지난해 삼겹살 수입국 1위는 벨기에(18.9%), 2위 칠레, 3위 프랑스였다. 베이컨을 많이 먹는 미국은 삼겹살 수출이 거의 없다. 수입되는 부위는 삼겹살-목살-갈비-앞다리살 순이다. 앞다리살은 햄 소시지용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즐겨 먹는 삼겹살이 어느 부위의 살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외로 잘 몰라요. 삼겹살은 배와 옆구리에 있는 살입니다. 돼지는 14개의 갈비뼈(늑골)가 있어요(소는 13개). 각각에는 번호가 붙어있는데 우리는 6번에서 14번까지 7개 갈비뼈에서 삼겹살을 떼어내지만, 유럽과 미국은 3번에서 14번까지 떼어내죠. 차이가 나는 것은 우리가 1~5번에서 갈비를 떼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소비량이 늘어나 수입량이 증가하면서 하도 갈비, 갈비 하니 이들 나라에서도 이제는 4번과 5번에서 갈비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걸 ‘한국형 고기’라고 하죠.”

-한국형 고기라는 게 뭡니까?
“우리와 미국은 고기 부위 자르는 게 달라요. 우리는 딱 한 번 전체 고기를 반으로 자를 때 톱을 쓰고 그 외에는 모두 칼로 해결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거의 대부분 톱으로 합니다. 우리는 관절을 온존하게 발라내는데 톱으로 하면 이 뼈들이 다 깨져버립니다. 별 볼일 없는 부위가 돼버리는 거죠. 미국은 대량 생산체제(한 도축장당 2000~6000마리)여서 일일이 손으로 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문화적으로 뼈를 중시하는데다 소규모 생산체제(한 도축장당 150마리)여서 알뜰하게 발라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고기에는 뼈에 살이 붙지 않아요. 뼈 수입을 못하는 이유죠. 다만 공업용으로만 가능한데 이건 본 차이나(도자기)에 쓰입니다.”

40년 넘게 고기를 보고 만지면서 살아온 전문가답게 그의 이야기는 막힘이 없었다. 각종 수치까지 들어있어 받아 적기가 힘들 정도였다.

“쇠고기 중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건 갈비예요. 그 다음이 등심이고요. 이 순서 또한 강한 맛과 일치해요. 갈비는 씹는 질감하며 풍미가 느껴지지만 등심에서는 그걸 느낄 수 없거든요. 등심은 부드러움 때문에 먹습니다.”

<이코노미스트 9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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