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천과 여만철 일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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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쪽 고향에 처자식을 두고 온 동화작가가 친구로부터 한쌍의 새를 선물로 받는다. 어느날 새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던 동화작가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꿈을 파는 집」을 찾게 된다. 꿈을 파는 할머니의 권유에 따라 그는 이북에 두고온 아이들의 사진을 주고 알약을 얻는다. 알약을 먹고 그는 한마리 새가 되어 북의 고향을 찾아간다. 그러나 정작 그가 찾은 곳은 그토록 그리던 정겨운 고향이 아니었다. 헐벗고 굶주림에 떠는 차마 올 곳이 못되는 곳이었다.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동화작가 강소천의 『꿈을 파는 집』은 작가 자신의 고향사실을 그린 대표적 동화다. 함남 고원군 미둔리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결혼한뒤 청진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흥남 철수때 부모 처자식을 모두 남겨둔채 단신으로 월남했다. 남쪽에서의 그의 생활은 두고온 고향과 처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찼고 그의 작품들은 『꿈을 찍는 사진관』 『꿈을 파는 집』처럼 언제나 꿈을 꾸며 고향을 그리는 향수와 실향의 아픔으로 차있다.
그는 꿈을 통해 고향을 찾고,꿈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 했다. 비록 두고온 고향이 가난과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이지만 언젠가 우리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다시 고향을 찾으리라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소천처럼 반생을 살아온 수백만 월남 가족들은 요즘처럼 꽃피고 새우는 봄날이 되면 더욱 깊은 향수에 빠질 것이다.
이럴 때 우리를 찾은 여만철씨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은 두고온 고향에 대한 아스라한 향수마저 짓이겨 놓는다. 『강냉이죽 한그릇 더 먹을 수 없느냐고 아들이 물어올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팠다』는 여씨 부인의 증언은 40년전 강소천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와 조금도 다를바 없다.
더욱 기가 막힐 일은 기쁨조에 뽑힌 딸 금주양의 증언이다. 누구를 위한 기쁨조인지 한번 뽑히게 되면 허리를 가늘게 하기 위해 체력단련을 해야 하고 하반신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기쁨조 선발 자체가 영광이고 끼니를 잇는 방편이 된다니 이게 도대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 없다.
고향은 아름답고 정겨운 추억속에 간직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북쪽 고향은 꿈속에서마저 가난과 고통으로 형상화되고 있고 그것이 또 명백한 현실임을 여씨 일가가 새삼 확인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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