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에 북핵 떠넘긴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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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 의제로) 북핵, 북핵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략적 의미로 얘기한 것이라고 평가한다"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북핵을 말하라는 건 가급적 가서 싸우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풀려가는 과정은 기정사실이고 한 고비 넘어간 것이고, 이제 다음 고개가 중요한데 바로 평화 정착"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과 관련해 '핵심 의제=평화협정'이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 속에는 다음달 2~4일 열릴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대신 평화체제를 집중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었다. 남북한.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잘 풀리고 있다는 만족감도 느껴졌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6자회담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게 그간의 정부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남북 관계 전문가는 "북핵 문제는 이제 작은 고비를 넘었을 뿐 그 핵심인 핵무기.핵물질 폐기에 대해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북핵 문제를 형식적으로 거론하겠다는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호주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7일)에서 북핵 문제가 풀려야 종전(終戰)선언과 평화체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며 "평화체제를 앞세우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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