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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흔적만 보여도 공천 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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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의도에 4년마다 되풀이되는 '배제의 계절'이 왔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각 당이 국회의원 후보 공천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한나라당 당사 4층 중회의실. 공천심사위원들의 작업장이다. 한쪽에 걸린 '변화의 첫 소리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플래카드가 물갈이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비리 흔적만 보여도 공천 보류"=이번 총선은 너도나도 개혁 바람이다. 한나라당. 민주당도, 열린우리당도 "공천 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만큼 현역의원들은 움츠러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이날 경쟁적으로 비리의원들에 대한 공천 배제를 강조했다.

먼저 한나라당.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부정부패 비리의 당사자는 반드시 대청소하겠다"며 "예상되는 (비리의) 흔적만 있어도 공천을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얼마나 실망하는지 속죄하는 심정으로 공천하겠다"고도 했다. 실제 영남지역의 K의원은 '나홀로 공천 신청자'이지만 유력후보 1차 선정에서 제외됐다. 검찰 수사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金위원장은 "쿠데타 관련자나 5.6공 정권의 창출에 핵심 역할을 했거나 인권탄압과 노동탄압에 연루됐다는 증거가 명확하고 피해자가 엄존한다면 공천을 주지 않을 방침"이라고도 했다. 5.6공 인사들이 적잖이 포진한 한나라당의 내부 긴장도는 높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도 이날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김정길 상임중앙위원은 당 공식회의에서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공천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큰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윤리위원회에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창복 의원이 팀장 격이다.

李의원은 "비리연루 혐의를 받고 있는 인사에 대해 실무팀이 자체 조사도 하고 털어낼 것은 털어낼 것"이라며 "중진의원들 문제도 제쳐놓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당내에선 개혁 공천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했다.

◆시작하자마자 '밀실공천' 논란=한나라당에선 벌써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생겼다. 전날 서류심사에 착수한 공천심사위가 영남권(경북 제외) 49개 지역구 중 12명을 유력후보로 선정하면서다. 부산시지부장인 권철현 의원과 서울시지부장인 박원홍 의원 등은 당 지도부에 "시도지부장이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후보를 확정하느냐"고 항의했다.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인권탄압 논란이 일고 있는 정형근 의원이 포함된 데 대해 "말로만 개혁"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남경필 의원은 "당의 중심을 바꾸는 게 진정한 물갈이인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물갈이연대 등 시민단체도 지난 총선 낙선운동 대상이었던 鄭의원과 김기춘 의원을 선정한 것을 비난했다.

하지만 공천심사위원들은 "鄭의원 문제의 경우 한시간이 넘는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면서 "밀실공천이란 비판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문열 위원은 "표피적인 것만 보고 비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날 민주당에선 '지역구 옮겨 출마하기' 논란이 일었다.

서울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김경재 의원은 "물갈이가 전북으로 확대돼야 할 때"라며 "정균환 의원(전북 고창)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전주 덕진에서 맞붙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총무까지 지낸 중진이 쉽게 당선되는 길만 택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소장파 인사들은 "수도권 지역에 호남 중진들을 차출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호남의 빈 자리에 정치 신인들을 배치하자는, 변형된 형태의 물갈이 논리였다.

박승희.김선하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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