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을살리자>26.밤-양주 밤나무골 밤할머니 송은희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경기도양주군장흥면삼하리 속칭 밤나무골.
서울 구파발에서 일영유원지쪽으로 2㎞쯤 가다보면 한 때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양주밤나무가 비교적 잘 보전돼 있는 1천여평의 밤나무밭이 도로변에 모습을 드러낸다.18세의 꽃다운 나이에파주 교하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토종밤과 더불어 평생을 보낸 「밤할머니」 宋銀熙씨(68)의 혼이 서려있는 곳이다.
잘 보전돼 있다고는 하지만 밭고랑 곳곳에는 오래전 베어져 나간 밤나무 밑동이 이름모를 버섯을 가득히 피워올린채 을씨년스럽게 널려있고 60년도 더 됐음직한 밤나무 50여그루가 듬성듬성서 있는게 고작이다.
자신만큼이나 나이바기들이지만 宋씨는 이 고목들에게 진 신세가이만저만이 아니다.공무원이던 남편의 박봉만으로는 어림도 없었을4남2녀의 뒷바라지를 남부럽지 않게 할 수 있었던게 모두 이 나무들에서 딴 밤을 팔아 가능했기 때문.
宋씨는 매년 가을이면 수확한 밤을 하루 한 두말씩 남대문시장에 들고 나가 당시만해도 양주밤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서울 사람들에게 다른 밤에 비해 곱절이나 비싼 돈을 받고 팔아 자녀들의학비등을 마련했었다.
젊은시절 宋씨가 양주밤으로 이같이 재미를 볼 수 있었던 것은이곳이 서늘한 기온과 물이 적당해 밤재배에 잘 맞는데다 장흥면장이던 남편이 동네를 밤나무골로 가꿔 이름이 난 덕분.그러나 宋씨는 70년대초부터 맛은 덜하지만 알이 굵고 값이 싼 개량종밤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토종이 설자리를 잃게 되는데다 생활도 안정되자 그저 밤나무를 없애지 않고 가을이면 따먹는 정도로밤농사를 계속했다.현재 밤나무밭 한켠에 음식점을 차려 큰아들 가족과 함께 밤나무를 지켜보는 재미로 살아간다는 宋씨는 3년전부터 식구들이 먹을 정도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이곳을 찾는 외지행락객들이 따가도록 해 이웃들에게 양주밤의 맛을 전해주고 있다.宋씨는 『알맹이가 단단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만 병충해에 약해 하루가 다르 게 쇠잔해가는 밤나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것만 같다』며『조선조에 진상품으로까지 꼽혔던 양주밤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楊州=金益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