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남북 정상회담서 북한 인권 거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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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북한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행위는 조사 대상에서 배제한다”고 천명했다. 참혹한 북한 인권 유린 상황에 눈을 감겠다는 결정이었다. 이랬던 인권위 내부에서 남북 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이 포함되도록 노무현 대통령에게 권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이 정권은 북한 인권 얘기가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다.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를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설득력이 없는 얘기다. 미국은 한국보다 수십 배 이상의 강도로 북한 인권 문제를 비판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미국의 문제제기와 관계없이 양국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개선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제기하면 파탄이 오고, 미국이 거론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 개선의 장전으로 평가받는 ‘남북기본합의서’가 1992년 발효될 때도 북한 인권 문제는 상존했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갈등만 심화할 것”이라는 게 정부 주장이다. 북한이 터부시하는 사안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북한 눈치 보기’에 불과하다. 레이건 등 많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소련과의 정상회담에서 소련의 인권문제를 거론했다. 그럼에도 전략 핵무기 감축 등에서 상당한 합의를 일궈냈다. 2000년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학 교내에 인공기를 건 학생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사법처리 방침을 거론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돌아가시라”고 말했다. 명백한 내정간섭 발언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측이야 자극을 받건 말건 ‘할 얘기’를 다했다. 북한이 자극을 받을까 봐 남측만 전전긍긍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행동일 뿐이다.

현재 인권은 인류사회의 보편적 기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국가별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같은 동포의 고통을 남북의 정권은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오히려 정상회담을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계기로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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