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정치인] 임태희와 漢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호 05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비서실장에 임명된 임태희(51) 의원은 별명이 없다. 튀거나 모난 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판교가 고향인 그는 경동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첫 시험에 반에서 40등을 한 그는 지독하게 공부했다. 바둑이나 기
타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결국 그는 문과 1등으로 졸업했다.

그의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1970년대 후반 판교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지어졌다. 그 공사판에서 벽돌을 등에 지고 나르며 그는 여름방학을 보냈다. 일당이 꽤나 괜찮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내내 그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이런 그도 대학 시절 방황에 빠졌다. 당시 불교 서클에 다녔던 그는 불경이나 불교 서적을 많이 읽었다. 그를 방황에 빠뜨린 것은 한 시구였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생(生)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사(死)는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도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생사거래도 역시 그런 것이고

공부밖에 몰랐던 ‘모범생 임태희’는 살고 죽는 게 한 조각 뜬구름 같고, 집착에서 모든 것이 생긴다는 구절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6개월간 이 시구를 붙잡고 고민했다. 이후 인생관이 많이 달라졌다. 그는 무엇을 하든 ‘자리’에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도 ‘자리 운’과 ‘승진 운’이 따랐다. 옛 재무부에선 다들 부러워하는 이재국 핵심에 있었고, 행정고시 동기 중 선두를 달렸다. 그는 ‘잘나가던’ 재경부 과장 시절 사표를 던졌다.

국회의원이 돼서도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대변인,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냈다. 그렇다고 그가 듣기 좋은 소리만 한 것은 아니다. 되레 가슴에 못박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2004년 2월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소장파와 중진들로부터 퇴진 요구에 시달렸다. 불법 대선자금 사건 등의 악재로 당의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던 때였다. 대표 비서실장이던 그는 최 대표에게 “대표께서 당을 살리는 주춧돌을 놔주셔야 한다. 지금 물러나는 게 정치적으로 사는 길”이라고 건의했다.

2005년 7월 대변인이던 그는 당시 박근혜 대표로부터 “정수장학회(옛 부일장학회) 문제에 대해 대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위가 부일장학회 헌납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란 결론을 내렸을 때다.

그는 “당에서 대응하면 당도 대표도 더 부담이 된다”며 거절했다. 그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갔다. “정수장학회에서 지원받고 있는 것이 있다면 끊는 것이 대표에게 도움이 된다”고 박 대표에게 건의했다. 이후 그는 박 대표와 거리감이 생겼고, 한참 뒤에야 다시 좁힐 수 있었다.

이명박 후보 비서실장이 된 그가 이 후보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을까. 그는 “후보에게 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리’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