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권­소신 충돌로 파국/총리경질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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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UR 사과 못한다” 버텨 청와대 불쾌감/YS 중·일 순방때 「안보회의」 소집 갈등/“차기대권 뜻” 풍문·상도동 실세와 마찰도 한몫
표면적으로 통일·안보회의건이 촉발시킨 이회창총리의 전격경질 파문은 그러나 이 총리의 취임초부터 그 불씨를 안고 있었다는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특유의 소신과 강직성에 비례해 늘 총리로서 자신의 권한과 프라이드를 지키려 했던 이 총리는 필연적으로 통치권 영역과 미묘한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총리 재임 4개월동안 청와대 비서실·내각·민자당 등 범여권의 핵심인사들과 이 총리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마찰이 뒤따랐고,그가 「위상」을 강조할수록 주변의 견제도 점차 비례해져갔다.
○…이 총리와 청와대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일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분야 수정에 따른 총리의 사과문 발표에서부터였다.
당시 이 총리는 『내각이 나를 속이고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이게 된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하며 청와대가 총리사과문까지 작성해 내려보냈는데도 불구,사과하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 총리는 설득차 직접 찾아온 박관용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내각이 그런 잘못을 한 적이 없다』 『사과문이 논리상 맞지 않는다』 『내각을 이렇게 못쓰게 만들면 안된다』며 개탄조로 완강히 버텼다.
○조정회의로 견제
이 총리는 『이미 방송중계차가 와 있다』 『사과성명 예정까지 나가지 않았느냐』고 사정하자 『중계차는 보내고 예정도 취소하라』고 막무가내였다.
그는 밤새 버티다 『이 문제는 국가의 통솔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는 심각한 사태로 발전된다』는 참모의 조언으로 오전 6시에야 가까스로 마음을 돌리는 등 청와대의 애를 태웠다.
이 사건이 권력내부에 알려지자 『총리가 인기관리에만 신경쓰지 악역은 맞지 않으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경질의 직접계기가 된 통일·안보회의 파문의 뿌리는 지난달 대통령 일·중 순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총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꼽히는 안보장관회의를 대통령이 없는 사이 두차례나 소집했다.
지금까지 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한 총리가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해석하기에 따라선 역린으로 볼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음은 물론이다.
대통령 귀국후 청와대가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급작스레 통일·안보조정회의를 신설한 것은 바로 이 총리에 대한 견제의도가 다분히 깔려있음을 짐작케 했다.
청와대 비서실에선 당초 회의 멤버에 총리실을 제외시켰다. 안기부·국방·외무 등의 5명만으로 구성키로 했었다.
이에 이 총리가 즉각 청와대에 항의의 뜻을 전달하자 청와대는 총리비서실장을 뒤늦게 포함시켰으나 발언권없는 배석자로만 역할을 국한시켰다.
청와대 비서실에선 『대통령이 1백%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6대 4의 지분을 갖자는 것이야』는 등 이 총리에 대한 노골적 불만이 터져나오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통일·안보회의 참석자도 사전승인을 받아라』는 이 총리의 「도전」성 발언으로 파국을 맞은 것이다.
○…청와대와 이 총리를 더욱 소원하게 만든 것은 『이 총리가 차기 대권에 뜻을 두고 있다』는 이상한 풍문 때문.
사석에서 종종 『나보고 정치적이라고 하지만 정치는 절대 안한다』고 강조해온 이 총리였지만 정반대의 소문이 자꾸만 퍼져나가자 은밀한 주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이러한 조사를 뒤늦게 눈치채고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청와대측은 『최근 이 총리의 몇몇 행사를 살펴볼 때 총리에 대한 의전이 대통령 의전수준에 맞먹을 정도로 요란해졌다』는 등 이 총리를 곱지 않게 보는 분위기였다.
○최 내무의 기꺾어
이 총리는 취임직후부터 「강성」으로 나와 청와대측에 부담을 느끼도록 했다. 그는 장관들이 총리를 건너뛰고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을 강력히 제지했고,각부처의 입법예고도 반드시 발표 2일전에 총리실의 협의를 거치토록 했다.
이 총리는 이제까지 대통령에게만 보고된 군인사문제에 대해서도 사전보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임명발표후 국무회의 의결과정을 거친 장성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임명건에 대해서는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따지기도 했다.
이 총리는 홍재현 재무장관과 김우석 건설장관이 각각 농어촌 특별세 재원조달 방안과 수도권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을 청와대측과의 협의만 끝낸 상태에서 발표하자 불호령을 내렸다.
그는 이밖에도 장관들이 무슨 행사 등을 이유로 국무회의에 불참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등 「허세」나 「얼굴마담」이 되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었다.
○…이 총리는 김 대통령 측근 출신 각료,시·도지사들에 대해서도 가치없는 질타를 가해 이른바 「실세」들과도 관계가 안좋았다.
이 총리는 개각이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해 12월22일 장관들과의 상견례에서 『항간에는 실세장관이니,허세장관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우리 모두가 실세』라고 말했다.
이 말은 『책임있게 일하자는 뜻이었다』는 총리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최형우 내무장관 등 대통령 측근장관들에 대해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최 장관은 실제로 이 총리에게 기가 단단히 꺽인 적이 있다. 그는 지난 1월 낙동강물 오염사태 발생직후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현장에 가보니 언론보도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발언,이 총리로부터 『그렇다면 내가 소집한 회의가 필요없다는거요』라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 이 총리는 또 지난 1일 시·도지사 회의를 소집,물의를 빚은 최기선 인천시장·박태권 충남지사에 대해 『몸가짐을 바로 하라』고 질책했으며,지난 14일 청와대측이 통상 등 전문행정각료 양성책을 밝히자 『대통령을 보좌하는 침모가 어떻게 정부방침을 발표할 수 있느냐』고 불쾌해 했다.<최훈·이상일기자>
◎청와대 마지가 대좌와 그후/김 대통령 “책임져라” 몰아치기 고성 20분/이 총리 “후계자 소리는 없어지겠지” 독백
이회창총리의 21일 있은 「도전적 행위」에 격분,이 총리의 해임을 각오하고 있던 김영삼대통령은 22일 오후 4시 이 총리가 주례보고를 위해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21일 발언 경위 등을 추궁.
당시 집무실 주변에 대기중이던 비서관들은 김 대통령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밖으로까지 흘러나오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데 김 대통령은 이 총리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20여분이 넘게 이 총리를 힐난했는 것.
김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그의 21일 행위는 『통치권에 대한 도전적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그간 이 총리로 인한 내각내의 불협화음까지 열거하며 책임을 지라고 촉구했다는 후문이다.
이 총리는 김 대통령에게 자신이 통일·안보조정회의의 사전 승인을 발표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 총리는 청와대 주례회동에 참석키 위해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사표를 제출할 사태까지는 예측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표를 휴대하지 않았으며 독대후 청와대에서 내려오자마자 황영하 총무처장관을 불러 사표를 전달케 했다.
대통령과 이 총리 둘간의 독대때 분위기는 그후의 상황으로 미루어서도 매우 격앙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이 총리가 문밖을 나서자 불과 2∼3분도 안되어 이영덕 통일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거두절미하고 『이 부총리,총리를 맡아주어야겠어』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이를 『총리가 잡음을 이르키니 총리를 잘 도닥거려달라』는 소리로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 총리는 총리실 간부를 소집해 놓고 자신이 사표를 냈음을 밝히면서 『이제는 후계자 운운하는 소리가 없어지겠지…』라는 독백을 하며 『처와 자유롭게 산보나 하며 살겠다』고 홀가분한 입장을 토로했다.
기자들이 이미 총리실 앞에 몰려있는 것을 의식하여 참모들이 『떠나시게 되는데 한말씀 하셔야지요』라고 퇴임변을 밝힐 것을 건의하자 『물러나는 사람이,조용히 물러가겠다』고 해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없이 총리공관으로 퇴청.
이 총리는 이미 전날 통일·안보조정회의의 사전 보고발표를 하면서 대변인에게 『일점 일획도 고치지 말고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하여 이미 그때 최후의 순간을 결심했다는 설도 있다.
보좌진들은 『이러한 발표는 큰 물의를 이르킨다』고 했으나 그는 사퇴를 이미 각오했다는듯이 결연했다는 것이다.<김현일·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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