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평생학습과 시민단체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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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평생학습이란 학위취득·나이·직업에 관계없이 취미든 취업 목적이든, 정규 과정이든 비정규 과정이든 기회만 닿으면 ‘평생 배우자’는 것이다. 창의성이 중시되는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평생학습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적자원 개발(HRD)의 기본은 평생학습이란 말까지 나온다. 평생학습의 효시는 야학이겠지만, 지금은 평생학습 주체나 교육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주체는 지방자치단체다. 지자체만이 주민들에게 지역 특색에 맞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조직적·체계적으로 제공하고 꾸준하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의 지식 수준이 높아지면 지역 경쟁력이 커지고 지역 발전으로 직결되는 가시적인 효과가 생긴다. 이것이 선진국에서 활발한 학습도시 운동의 기본 정신이다.

학습도시 운동은 1979년 일본 가케가와(掛川)시가 시작했다. 이후 92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의에서 ‘지식기반 시대에는 끊임없는 주민 학습이 경쟁력’이란 논의를 계기로 전 세계로 확산됐다. 2005년 현재 일본에는 136개, 영국에는 32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 평생학습을 통해 우수한 주민을 양성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고용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선진국은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반면 우리는 21세기 들어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교육부가 평생학습도시를 선정해 예산을 지원하고, 평생학습축제·평생학습대상을 만들었다.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시·군은 올해로 76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는 매년 돌아가면서 평생학습축제를 개최한 광명시·부산시 해운대구 등이나 다음달 자체적인 평생학습축제를 여는 부평시처럼 열심인 곳도 많다.

평생학습이 잘되는 지역의 주민 반응은 매우 좋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05년 19개 평생학습도시를 실태 조사한 결과 주민 참여의식, 삶의 질, 지역 만족도, 경제 발전 등에서 효과가 컸다. 경북 칠곡군 등 평생학습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난 지역에는 이사 오는 주민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취약한 점도 많다. 양적으론 팽창했지만 관 주도로 진행돼 민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곳이 적지 않다.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평생학습이 진행되다 보니 지자체장이 교체되면 주춤해지는 곳도 있다. 변종임 한국교육개발원 평생교육센터 정책기획팀장은 “시민단체 등 시민 주도로 진행돼야 평생학습운동이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선진국에선 시민단체들이 앞장섰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올해 평생학습축제를 개최한 창원시는 95년 평생학습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시민단체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이명옥 창원시 평생학습과장은 “24개 동사무소를 절반으로 통폐합한 후 폐쇄한 동사무소 건물을 주민 학습센터로 전환했는데, 시는 예산 지원만 하고 운영은 경남여성회·YMCA·주민자치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하나씩 맡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 부천시도 시민단체들이 먼저 지자체에 평생학습 운동을 제안하고, 지자체도 적극 호응해 성공했다. 이는 시민단체들의 역할에 대해 시사하는 바 크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권력을 휘두르려 하기보다는 이같이 지역과 주민 발전에 앞장서는 것이 시민단체의 기본 역할이 아닐까.

오대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