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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몰락… 구 여권 착잡/말도 못하고 대세순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씨 속앓이 숨기며 북핵·UR에 관심
전두환 전 대통령은 17일 오전 연희2동 자택 근처에서 부인 이순자여사·맏아들 재국씨 부부와 함께 배드민턴을 쳤다. 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오후에는 22일 모교인 대구공고를 찾아가 재학생들에게 해줄 얘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동창회 초청으로 강단에 서는 이번 강연회는 퇴임후 6년만에 갖는 첫번째 공식 강연회다. 구수한 화술과 개그맨 못지않은 재치로 청중을 휘어잡는 재주가 있는 그로서는 모교 나들이가 설레는 일이다.
적어도 그의 이날 일과에는 전날 하나회 고위장성을 군문에서 축출한 군인사에 대한 심경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회 후배들의 좌절에 대해 전씨는 내심 무척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정규 육사출신의 맏형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로서는 자신이 남긴 행적의 응보를 후배들이 받고 있는 것에 착잡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나회의 몰락에 대한 구 여권의 반응 역시 착잡하다.
구 여권 권력을 사실상 뒷받침해왔던 하나회가 몰락함으로써 뿌리 잘린 나무와 같은 형세가 됐다.
지난해 김진영 참모총장 경질이래 하나회 배제원칙이 1년뒤에도 무차별 적용된데 대해 하나회출신 전직 장관이나 의원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자질과 능력을 따지지 않은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그러나 하나회 척결과 상관없이 김 대통령을 돕겠다는 전씨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회출신 전직 청와대 인사는 전하고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전 전 대통령은 대세순응형』이라는 점 때문이다.
전씨의 요즘 관심은 북핵문제·우루과이라운드 등에 쏠려있다고 한다.
매주 목요등반회때 함께 산행에 나선 전직 장관·의원출신들과 진지한 토론을 한다고 한다.
「과거사」는 그의 관심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밖으로는 이렇게 정치에 초연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등 지방선거를 의식해 5공 핵심인사를 중심으로 물밑 정치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5공 세력이 정치적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회의 완전제거는 그들로서는 악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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