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서비스도 고객입장에서/심상복 경제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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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원에 가면 「표파는 곳」이라는 푯말을 본다. 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공원측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곰곰 따져보면 뭔가 잘못돼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표를 판다는 표현이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 쪽에서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입장에 서서 진정 그들을 위해 마련한 표지판이라면 「표 사는 곳」으로 써야 옳다.
영화나 연극 등 대중들이 즐겨찾는 각종 공연장에서도 「표파는 곳」이란 문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방화시대를 맞아 대고객서비스 향상을 생존전략으로 부르짖고 있는 은행들도 예외는 아니다. 해외여행이나 출장에서 쓸 미 달러화를 사기 위해 은행엘 가면 뭐가 뭔지 얼른 알 수가 없다.
오늘의 환율시세표에 현찰매도율·현찰매입률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일반고객들로선 현찰이라는 용어가 여행자수표가 아니라 외국돈 자체를 뜻하는 것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현찰이란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도율·매입률이란 용어가 은행입장에서 표기된 것이어서 고개들로서는 헷갈리지 않을 수 없게 돼있다.
현찰매도율이란 은행이 고객에게 달러화를 팔 때 적용하는 환율이며,반대로 현찰매입률은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달러를 사들일 때 적용하는 것이다. 외환은행 등 일부 은행은 이미 이 표현을 고객입장에서 「현찰을 살 때」 「현찰을 팔 때」로 바꾸긴 했지만 아직도 대다수 은행들은 종전 표현을 그대로 쓰고 있다.
행정을 최대의 서비스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고쳐야 할 것들이 숱하게 눈에 띈다.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만들어 언론과 국민에게 배포하는 공식발표 자료를 보자.
여기에는 아직도 냉해 「우심」지역이라든가,해외부문에서의 통화 「살초」와 같이 알아듣기 힘든 어휘가 등장하고 있다. 「여하한 경우에도」 「대상사업수가 과다하여」 「위하여」와 같이 한자가 남용되는 경우도 많다.
장·차관의 구미에 맞는 정책자료를 만드는 일에 익숙해 있을뿐 국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는 아직도 부족한 탓이다. 개인·기업·정부 누구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어떻게 하는 것이 그쪽 입장에 서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경쟁력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서 움트고 커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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