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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이승만 自主, 노무현 자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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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미관계사에서 가장 자주적이었던 인물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 나라 좌파들은 그를 친미분자, 미국 앞잡이로 매도하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미국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낸 인물은 바로 그였다.

자주란 무엇인가. 국가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국가이익의 최우선은 국가의 보전이다. 정치나 경제는 잘못되면 나중에라도 고치면 된다. 그러나 나라 울타리가 무너진 뒤에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이승만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립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인물이었다.

*** 이승만은 모든 걸 걸고 협상 나서

한국전쟁에 개입한 미국은 전쟁이 길어지자 휴전을 서둘렀다. 발을 빼고자 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 상황에서 미군이 빠진다는 것은 한국의 붕괴라고 믿었다. 지도를 보라. 중국.소련에 맞닿은 한국이라는 약소국이 과연 공산화 안 되고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를…."공산화되면 어때, 통일이 제일이지"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가 미국을 붙잡아 두려고 맺은 조약이 한.미방위조약이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협상 대상조차 안 될 정도로 미약하고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뜻에 반하여 반공포로를 석방했고, 단독으로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고집했다. 조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골치 아픈 그를 제거하기 위해 '에버레디'라는 쿠데타 계획까지 세웠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승만은 자신의 요구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잘 알면서도 이러한 요구를 협상의 무기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덜레스 국무장관은 이승만에게 "미국은 역사상 어떤 나라에도 이렇게 많은 것을 양보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가 아니라 자주적인 인물이었다. (拙著, '한.미 갈등의 해부', 나남)

미군의 한강이남 재배치 협상이 끝났다. 미군의 휴전선 인계철선 역할은 이제 끝났다. 북한이 도발한다 해도 미군이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은 앞으로 없다. 미국은 북핵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북한을 선제 공격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입장이 되고 싶었지만 한강이북의 미군이 문제였다.

북한의 방사포 사정권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 노동신문은 미군의 한강이남 재배치에 대해 "미제가 일대일로 맞붙어 싸우는 전쟁을 피하고 먼 지역에 기지를 잡고 비행기와 미사일로 선제 타격, 집중 공세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2003.11.19).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미군의 안전도 지키고 선제 공격할 환경도 마련했다. 원하던 것을 다 얻어냈다. 아니, 말려야 할 한국 정부가 멍석을 깔아줬으니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미군의 한강이남 재배치로 전쟁위험은 더 높아졌으며, 미군의 방어력도 이제는 없어졌다.

1백여년의 외국군 기지가 없어졌다고, 용산공원이 생겼다고 좋아할 일인가. 반전.반미를 외치는 사람들이 정말 반전을 원한다면 미군을 한강이북에 붙잡아 두어야 했다. 미국은 언제나 세계전략 속에서 한반도를 보아왔다. 한국이 예뻐서 따로 생각해 주지는 않는다. 강대국이란 언제나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 그것이 현실이다. 북한이 끝까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반(反)테러라는 세계전략 속에서 자신의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 입술만으로 '자주' 보장되진 않아

보통시민들이 "지금 안보상황은 안전한가"를 점검하며 살 수는 없다. 그 염려는 당연히 국가운영을 책임 맡은 자들의 몫이다. 지금 국가 운영자들은 이 시절의 국가안전에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 "반미 좀 하면 어때"하며 어깨를 으쓱한다고 자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반미가 자주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자주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힘으로 북한을 막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혹시 이 정부가 북한은 전쟁 능력과 의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별개의 논점이다). 북한의 위협뿐 아니라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원초적으로 자주에 한계를 지닌 나라다. 미국이 나가면 그 힘의 공백을 다른 강대국이 메우러 나선다. 줄타기 외교든, 동맹외교든 해야 한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이번 협상에서 무엇을 얻어냈는가. 자주를 한다고 미군을 보냈으면 북한의 방사포는 우리 손으로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미군이 쓰던 방어무기라도 인계받아야지, 미군에게 이전비까지 다 주고 얻어낸 것이 당연히 우리 땅인 용산공원뿐인가. 이번 협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분위기로, 입술로 자주를 하자는 선거전략인가. 나라 장래가 걱정된다.

문창극 논설주간